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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장리 이정표석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0907
한자 竹杖里里程標石
영어의미역 Milestone of Jukjang-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재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금석각류|기타비
양식 일반형 비석
건립시기/일시 조선시대
높이 121㎝
너비 47㎝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에 있는 조선시대 길의 거리를 표시하여 세운 표석.

[개설]

오늘날 시골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장승, 정자목, 돌무지[積石], 흙둔덕[堠] 등은 모두 고대의 도로 측량과 관련되는 유물로서 후에 도로 표지로 기능이 전환된 것이라 여겨진다. 특히 조선시대 세종대에는 노폭, 이정(里程), 노표(路標) 등에 관한 정비계획이 수립되어 정책적으로 이를 시행하기도 하였다.

1441년(세종 23) 세종은 전국적으로 도리(道里)의 측정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이때 기리고차(記里鼓車)라는 흥미 있는 기계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거리 측정계가 부착된 이 기계는 매 10리를 갈 때마다 인형이 자동적으로 한 번씩 북을 두드리도록 설계되어 있었다고 한다. 한편 조선시대 편찬된 지리지와 읍지 등에는 각 방리(坊里)를 설명함에 있어 읍치로부터의 거리를 우선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죽장리 이정표석은 이러한 읍치로부터 해당 방리까지 길의 거리를 표시하고자 세운 것이다.

[건립경위]

조선시대 거리 표시에 있어 대표적인 표지가 되는 것은 장승이라 할 수 있겠지만, 돌로 된 이 표석은 1982년 마을 주민에 의해 제방 둑에서 발견되어 지금의 위치에 세워지게 되었다.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에서 이정(里程)을 표시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여겨진다.

[위치]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고방실마을 입구 지방도 920호선 도로변에 단계하위지묘도비(丹溪河緯地墓道碑)와 나란히 세워져 있다.

[형태]

표석의 윗부분이 평평하고 모서리가 각이 있는 직수(直首) 형태의 비신만이 남아 있으며, 비신은 높이 121㎝, 너비 47㎝, 두께 18㎝이다.

[금석문]

비석에는 종서로 ‘부치서십리방명고방송(府治西十里坊名古方松)’이라 새겨져 있다.

[현황]

죽장리 이정표석은 1982년에 제방의 둑에서 발견되었으며,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로가 없는 교통은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전통시대의 도로간의 이정(里程) 표지는 거리 측정 방법 등이 많지 않았던 당시의 실정을 생각할 때 지방 통치, 외침에 따른 대비 등 여러 방면에서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 표석을 통하여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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