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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459
한자 金正默
영어음역 Gim Jeongmuk
이칭/별칭 해산,규환,국빈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원평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구미시 원평동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88년연표보기
몰년 1944년연표보기
본관 일선
대표경력 대한민국임시정부 경상도의원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김정묵(金正默)은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14년 북경서성중국대학(北京西城中國大學) 정치학과를 졸업하였으며, 1915년 항일투쟁을 목적으로 중국 동삼성(東三省) 장작림(張作霖) 휘하 곽송령(郭松齡) 부대에 입대하여 군사훈련을 받았다.

1918년 밀입국하여 장진홍(張鎭弘)과 독립운동 방향을 의논하였고, 1919년 3·1운동 직후 북경으로 피신하였다. 1920년 북경 서직문(西直門) 밖 팔만정(八萬亭)에 사비로 집의학교(集義學校)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이후 상해와 북경 등을 오가며 독립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경상남도 산청의 유경환(柳璟煥), 경상북도 대구의 백남규(白南圭), 경상북도 성주의 김창숙(金昌淑), 경상북도 상주의 이동형(李東瀅)과 함께 경상도의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1년 5월 신채호(申采浩) 등과 함께 통일촉진회를 조직하였고, 김창숙(金昌淑)·박순병(朴純秉)·신채호(申采浩) 등과 함께 월간지 『천고(天鼓)』를 발행하여 중국인들에게 한국인의 독립정신을 일깨웠다. 1924년 2월 만주에서 독립신문사 길림지국장을 맡았으며, 이후 다시 중국군에 입대하여 동북지방 육군 제19여단사령부 군법처장을 역임하였다.

1926년 하얼빈에서 의열단 활동을 지원하여 일본 요인 암살과 일본제국주의 통치기관의 폭파 계획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11월 북경에서 강부약(姜扶弱)·김광선(金廣善)·신익희(申翼熙)·조성환(曺成煥) 등과 함께 한국독립유일당 북경촉성회를 조직하여 일본제국주의의 타도와 독립운동자의 단결에 힘썼다. 1932년 4월 29일 일본의 천장절(天長節) 및 중일전승축하식(中日戰勝祝賀式)이 있던 상해 홍구공원(鴻口公園)에서 윤봉길(尹奉吉) 의사의 의거를 준비하였다.

[상훈과 추모]

독립운동에 대한 공훈이 인정되어 1963년 대통령표창과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내려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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