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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성수리 연봉산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박운이 강학과 휴식을 하던 장소에 있는 암벽. 구미 용수암은 박운(朴雲)이 강학 및 휴식을 하던 곳이었다고 전해지는 장소에 있는 큰 암벽이다. 박운은 구미시 해평면 괴곡리 출신으로 1519년(중종 14년) 진사시에 입격하였고, 명종 때 부사용을 지냈다. 박영(朴英)[1471~1540]의 문도이며, 만년에는 퇴계(退溪)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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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구미 지역 금오산에 축조한 이중의 석축 산성. 금오산성을 처음 쌓은 연대가 문헌상에 있지 않아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 후기 왜구들이 내륙 깊숙이까지 빈번히 쳐들어와 인명을 살상하고 노략질을 일삼자, 인근 선산·인동·개령·성주 백성들이 금오산(金烏山)에 피난하여 왜구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쌓고 군병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이곳에 군량과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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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북쪽 기슭 바위벽에 새겨진 글자. 금오산 삭도 승차장에서 등산로로 150m 정도 올라간 지점에 오른쪽 바위벽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큰 바위벽에 조선 중기 명필인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 1521~1567)가 새긴 ‘금오동학(金烏洞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금오동학’이란 네 글자는 가로·세로가 2척(二尺)이나 되는 대자(大字)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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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대혜폭포 앞 자연바위에 새겨진 글자. 남통동 금오성 수축 구정칠택 암각은 1596년(선조 29) 금오산성 내에 아홉 개의 샘과 일곱 개의 못을 파고 금오산성의 수축을 완료한 기념으로 새긴 것이다. 금오성 수축 구정칠택 암각은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대혜폭포 앞에 있다. ‘선조 병신(宣祖 丙申) 선산부사 배설(善山府使 裵楔) 축 금오성 천 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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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도선굴 암벽 두 곳에 새겨진 글자. 남통동 도선굴 통로 기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천석통로(穿石通路)라는 내용의 도선굴 통로 왼쪽 수직 암벽에 새긴 암각문이고, 다른 하나는 도선굴 내부 돌출된 벽 위에 고정시킨 금오산 굴 통로기(金烏山窟通路記)라는 제목의 직사각형 판석(板石)의 명문(銘文)이다. 금오산 굴은 금오산의 빼어난 경치를 한눈에 바라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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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대혜폭포 왼쪽 암벽 위에 새겨진 글자.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대혜폭포의 왼쪽에 위치하는 암벽에 새겨져 있다. 남통동 오금포 암각은 금오산 대혜폭포 왼쪽 암벽 위에 ‘오금포’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이다. 폭포의 표고는 400m, 낙차 28m로 영남 8경에 속한다. 오금포의 자경은 30×2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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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도선굴 아래에 새겨진 글자. 조선시대 1592년(선조 25)에 경상좌도 함안 사근도역(沙斤道驛) 찰방(察訪)을 지낸 김종무(金宗武)의 막내아들인 욕담(浴潭) 김공(金羾)은 20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도선굴(道詵窟) 아래 움집을 짓고 은둔하였다. 조정에서 아버지 김종무의 공훈으로 벼슬에 제수해도 “벼슬하러 한양 가는 길은 상주 땅을 밟아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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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대혜폭포 옆 암벽에 새겨진 글자.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인 중에 금오산 도선굴 아래 움막을 짓고 학문에만 전념하던 선산인(善山人) 김공(金羾)이 암벽에다 ‘욕담(浴潭)’이라고 새기고 자호(自號)를 욕담이라 했다고 한다. 남통동 욕담 암각은 금오산 대혜폭포에 아래 욕담이라 불리는 못[沼] 부근 암벽에 새겨져 있다. 남통동 욕담 암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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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내예리의 자연석에 새겨진 글자. 내예리 연화장 암각은 1990년 6월 소하천 및 도로를 정비할 때 노출되어 발굴하게 되었다. 발굴 이후 구미시 고아읍 내예리에 재건해 놓았다. 내예리 연화장 암각은 ‘안토락천 연봉국지(安土洛天 蓮峰局地)’라는 제명으로 각자(刻字)되어 있다. 덕산황씨(德山黃氏) 문중에서 1521년(중종 16)에 높이 1.15m 폭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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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 낙동강변의 통로 암벽에 새겨진 글자.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 하농소마을에 있는 양수장 북편 낙동강변의 통로 암벽 돌출된 부분에 있다. 돌출된 약 3m 크기의 바위 가로 1.2m, 세로 2m의 평면을 다듬은 곳에 ‘석문(石門)’이라는 글자가 자경 15㎝ 크기로 새겨졌으며, 서체는 행서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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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 낙동강변의 절벽에 새겨진 글자.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 하농소마을에 있는 양수장 북편 낙동강변 절벽에 있다. 가로 5m, 세로 10m 크기의 암벽의 약 1~2m의 벽면에 ‘운도(雲島)’라는 글자가 자경 약 20㎝ 크기로 새겨져 있으며, 서체는 해서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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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 대둔사에 있는 ‘강희5년명’이라고 새겨진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당간(사찰에서 기도나 법회 등이 있을 때 당을 달아두는 기둥)을 지탱하기 위하여 세운 두 개의 받침대이다. 대체로 지주(支柱) 밑에 사각형의 대석(臺石)을 놓고 지주 사이에 원형 간대(竿臺)를 놓아 지주를 고정시킨다. 대둔사 강희5년명 당간지주는 대둔사가 건립되면서 만들어졌다. 원래 대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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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의 돌출된 암벽에 새겨진 글자. 독동리 문산동문 암각은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암벽에 있다. 독동리 문산동문 암각은 가로 세로 약 20m 크기의 돌출된 암벽에 ‘문산동문’이라는 글자가 자경 약 20㎝ 크기의 해서체로 각자 되어 있다. ‘문산계(文山界)’의 ‘계(界)’자가 메워져 후대에 동문(洞門)으로 새로 새긴 흔적이 보이며, 서체는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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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낙동강변 암벽의 돌출된 부위에 새겨진 글자. 독동리 북암 암각은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강창마을 낙동강변 바위에 있다. 독동리 북암(北岩) 암각은 약 20m 높이의 암벽에 돌출된 부위의 가로 약 5m, 세로 약 4m의 벽면에 자경이 약 20㎝인 해서체로 각자(刻字)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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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문산 동문 아래 바위 벽면에 새겨진 글자.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강창마을 낙동강변 바위에 있다. 독동리 송범대 암각은 문산 동문 아래 가로 1m, 세로 1.5m 크기의 바위 벽면에 ‘송범대(送帆臺)’라는 글자가 자경 약 13㎝ 크기로 새겨져 있으며, 서체는 해서체이다. 왼쪽 아래로는 ‘황학거사제(黃鶴居士題)’라고 새겨져 있다. 하운에서 돛단배를 보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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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 선산출장소 내 자연석에 새겨진 글자. 확실한 연대는 미상이다. 삼형제가 함께 선산(善山)·금산(金山)·순천(順天)의 수령(守令)이 되어 부임(赴任)하면서 이곳에 와서 놀았는데, 이때 차고 있던 관인(官印)을 이 돌 위에 끌러 두고 놀았다고 하여 ‘삼인석’이라 새겼다 전한다. 동부리 삼인석 암각은 구미시 선산출장소 청내에 있다. 동부리 삼인석 암각은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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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천생산 해발 400m 위치의 반석에 새겨진 글자. 신장리 경천애인 암각은 천생산 정상부에서 북쪽으로 해발 400m 지점의 천생산성 내 반석에 있다. 신장리 경천애인 암각은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글자가 자경 30㎝의 크기로 각자되어 있는데, 서체는 해서체(楷書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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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천생산 정상에서 북동쪽 사면반석에 새겨진 글자. 신장리 기암기석천년구 암각은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천생산성에서 북동쪽으로 해발 380m 위치의 사면반석에 있다. 사면반석에 자경 15×17㎝ 크기로 각자되어 있는데, 서체는 해서체이다. 좌측에 1938년 5월 19일(一九三八年五月十九日) 장주석(張柱錫) 등 인명 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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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천생산 정상부 남서쪽에 있는 미득암에 새겨진 글자. 구미시 천생산성 내 정상부에서 남서쪽으로 해발 400m 위치의 미득암(米得岩) 위에 새겨져 있다. 신장리 남현 암각은 자경 15㎝의 크기로 각자되어 있으며 서체는 해서체(楷書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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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천생산 정상에서 북동쪽 사면반석에 새겨진 글자. 신장리 천산녹수 암각은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천생산성에서 북동쪽으로 해발 380m 위치의 사면반석에 있다. 신장리 천산녹수 암각은 자경 15㎝의 크기로, 서체는 해서체(楷書體)이다. 사면반석 왼쪽에 ‘송평종태(松平鍾泰)’라고 각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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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여차정 서쪽 낙동강변 큰 바위인 장암에 새겨진 글자. 낙동강변 큰 바위에 새겨진 글자는 조선 후기 문신인 장학(張澩)의 친구 매은(梅隱) 전영(全榮)이 쓴 것으로 전한다. 임수동 장암 암각은 임수동 낙동강변의 여차정(如此亭) 서쪽에 있다. 임수동 낙동강변에 높이 약 5m, 넓이 약 3.5m가량의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 ‘장암(壯巖)’이란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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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낙동강변의 동락서원 옆 2개의 바위에 새겨진 글자. 임수동 천연대 암각은 낙동강변의 동락서원 서편 바위에 있다. 동락서원 옆에는 2개의 바위가 포개져 있는데, 위에 얹혀 있는 큰 바위(높이 2m, 둘레 약2m)에 세로로 비스듬히 ‘천연대(天淵臺)’라고 새겨져 있다. 글씨 크기는 천(天)은 10×17㎝, 연(淵) 16×20㎝, 대(臺) 17×19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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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에 있는 모례의 집에 있었다고 전하는 우물. 신라시대의 우물이라고 전하나 확실치 않다.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이 머물렀다는 모례의 집에 있던 유적이다. 아도화상과 모례에 대해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전 모례가정은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 360-4번지[도개4길 18]에 있다.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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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죽장사 입구에 있는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당간(사찰에서 기도나 법회 등이 있을 때 당을 달아두는 기둥)을 지탱하기 위하여 세운 두 개의 받침대이다. 대체로 지주(支柱) 밑에 사각형의 대석(臺石)을 놓고 지주 사이에 원형 간대(竿臺)를 놓아 지주를 고정시킨다. 선산읍 죽장리에 위치하는 법륜사(구 죽장사) 아래 죽장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 끝부분에서 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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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에 위치한 산성. 천생산성은 금오산성과 더불어 낙동강을 끼고 동서로 마주하면서 가산산성과 연결되는 국방의 요충지이다. 천생산은 정상이 일자봉(一字峯)으로 생김새가 특이하여 하늘이 내셨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속칭 함지박을 엎어놓은 듯하다 해서 방티산이라고도 부른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쌓았다는 기록이 『인동읍지(仁同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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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 지역 세심당 암벽에 새겨진 글자. 세심당은 1523년(중종 18)에 축조한 연당(蓮塘)으로 알려졌다. 죽정(竹亭) 장잠(張潛)이 지은 『세심당기문』이 있었으나 분실되어 사라졌다. 황상동 세심당 암각은 구미시 황상동 죽림정사(竹林精舍)의 오른편에 있다. 황상동 세심당 암각은 세심당의 암벽에 ‘세심당’이라고 세로로 새겨져 있다. ‘세심’이라는 말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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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 지역에 있는 세심당 암벽에 새겨진 글자. 조선 중종 때 인동현감으로 있던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은 공무가 끝나면 수레를 타고 죽림정사를 방문하여, 이 암벽에 앉아 죽정(竹亭) 장잠(張潛)과 학문을 강론하였다고 전한다. 이현(二賢)은 이언적과 장잠을 가리키는 것이다. 황상동 이현암 암각은 구미시 황상동 죽림정사 서편에 있는 세심당(洗心塘)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