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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0521
한자 長川面
영어음역 Jangcheon-myeon
이칭/별칭 북웅곡방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향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행정구역
면적 58.15㎢[2015년 12월 31일 기준]
총인구(남,여) 3,545명[남 1,807명, 여 1,738명][2016년 6월 30일 기준]
가구수 1,620세대[2016년 6월 30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행정구역.

[명칭유래]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를 개편하면서 마을 앞을 흐르는 내[川]의 길이가 길다하여 장천(長川)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옛날에는 남웅곡방(南熊谷坊)과 북웅곡방(北熊谷坊) 지역으로 군위군 효령현에 속하였고, 조선 초기에 북웅곡방으로 통합되어 선산군에 속하였다. 1895년 지방 관제 개편에 따라 장천면이 되어 신점, 신방, 석적, 홍계, 불동, 아동, 부곡, 수명, 저전, 여토, 여수, 덕제, 신장, 선교, 상도, 구장, 중동, 하도, 묵평, 상평, 삼산, 복로, 상림, 운곡, 중평, 중화, 신기, 오로, 오지, 여곡, 금화, 기동 등 32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1896년 지사인(知事人)을 두었고, 1908년(순종 2) 지사인(知事人)을 면장(面長)으로 개칭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몽대면 문수동과 인동군 동면 신덕동을 병합하여 석우, 명곡, 여남, 상장, 하장, 묵어, 오로, 상림, 금산 등 9개 지역으로 개편하였다. 이때 면사무소를 하장동에 두었다가 1923년 상장동으로 이건하였다. 1987년 석우리를 칠곡군 가산면에 편입하였고, 1989년 칠곡군 가산면 신장리를 장천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구미시와 선산군 통합으로 구미시 장천면이 되었다.

[자연환경]

동쪽으로 가산(架山, 568m)과 응봉산(鷹峰山, 331m)이 솟아 있고, 이어지는 능선은 한천(漢川)과 사창천(社倉川)의 분수계를 이룬다. 장천면은 한천 상류부의 좁은 골짜기가 많은 준 산간 지대로서 대부분이 300m 이하의 구릉성 산지이다.

동부 산지에서 발원한 명곡천 등의 소하천이 서쪽으로 흘러 하장리 일대에서 합류하며, 이들 하천 연안에 경지가 분포한다. 면계에는 적라산(352m), 천생산(407m) 등이 솟아 있다. 기후는 한서(寒暑)의 차이가 심하며, 연간 강우량은 950㎜ 내외로 적은 편이다.

[현황]

구미시 최동단에 있는 지역으로, 2015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8.15㎢이며, 2016년 6월 30일 현재 총 1,620세대에 3,545명[남 1,807명, 여 1,73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상장리, 신장리, 하장리, 상림리, 금산리, 오로리, 묵어리, 여남리, 명곡리 등 9개리(15개 법정리), 53개 반(43개 자연마을)을 관할한다. 동쪽으로 군위군 군위읍·효령면·부계면, 남쪽으로 칠곡군 가산면, 서쪽으로 산동면, 북쪽으로 군위군 소보면·군위읍과 접한다.

중앙고속도국도가 장천면 동부에서 남북 방향으로 지나며, 대구와 상주 방면을 잇는 국도가 지나는 남서부 지역은 교통이 편리하나 북동부 지역은 교통이 불편하다.

주로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이 밖에 고추·마늘·참외·수박 등 특용작물 재배가 성하며 한우 사육도 활발하다.

특히 30년 전부터 재배해 온 청양 풋고추는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여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고, 점질 토양에서 재배한 수박은 다른 지역 수박보다 당도가 월등히 높다. 한우는 270여 농가에서 1,700두가량 사육하고 있는데, 맑은 물과 신선한 초지 공급으로 육질이 뛰어나다.

교육기관으로 장천초등학교(7학급 122명)·오상중학교(8학급 200명)·오상고등학교(30학급 1,105명)가 있고, 금융기관으로 산동농협 장천지점, 의료기관으로 장천보건지소가 있다. 면 소재지인 상장리에서는 매월 5의 배수인 날에 정기 시장이 열린다. 문화 유적으로 천생산성(경상북도 기념물 제12호), 미륵당 석조미륵입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32호), 박운 묘(朴雲 墓) 등이 있다.

장천면은 신라 초기에 상주와 더불어 국경 지대에 있어 백제와 분쟁이 잦았던 곳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선산에서 장천을 거쳐 인동·군위·안동에 이르는 도로가 발달하였고 임상역(林上驛)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곳 출신인 황사충, 김윤부 등이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매복하였다가 왜적 10여 명을 죽인 곳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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