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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0561
한자 巴山里
영어음역 Pasan-ri
이칭/별칭 파토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파산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향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1.53㎢
총인구(남,여) 114명[남 67명, 여 47명]
가구수 54가구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조선 초기 김해허씨 일족이 처음 정착하여 살 때 마을 뒷산의 모습이 뱀과 비슷하여 마을 이름을 사미동(巳尾洞)이라 하였다. 그러자 집에 뱀이 너무 자주 들어오므로 못 들어오게 하기 위하여 뱀의 눈을 뺀다는 의미로 뱀 사(巳) 자에 점을 찍어 파토리(巴吐里)라 하였고, 후에 파산리가 되었다고 한다. 원래 파산은 중국의 지명으로, 마을을 개척한 김해허씨와 연관이 있는 지명이어서 파산동리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자연마을로는 봇들(일명 파산·파토동), 화개동(花開洞, 일명 하망정) 등이 있다. 봇들은 조선 말기에 대망리에서 파산리 쪽으로 큰 보(洑)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화개동은 봇들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양지쪽이어서 꽃이 일찍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망리의 망정 밑이어서 하망정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초기 이후 망장방(網張坊)에 속한 파토동리였고, 1896년경 망장방이 망장면으로 바뀔 때 화개동리 일부와 파토동리로 분리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화개동과 상망동 각 일부를 병합하여 파산동이라 하고 고아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동이 이(里)로 바뀜에 따라 고아면 파산리가 되었다. 1995년 구미시와 선산군 통합으로 구미시 고아면 파산리가 되었고, 1997년 고아면이 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구미시 고아읍 파산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마을 뒤 북쪽은 응방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마을 앞 남쪽에는 대망 뒷산이 높게 솟아 있다. 대망 뒷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마을 앞을 지나 대망천으로 흘러들며, 산막골저수지가 있다.

[현황]

2009년 1월 현재 면적은 1.53㎢이며, 총 54가구에 114명[남 67명, 여 4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장천면 오로리, 북쪽으로 황산리·응방산, 서쪽으로 신촌리, 남쪽으로는 대망리·대망산과 접한다. 국도 33호선과 김천시 아포읍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916호선이 마을을 지난다. 예전에는 대망리로 가는 산길과 황산리에서 물목고개로 오가는 고갯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몇 가구를 제외하면 김해허씨 집성촌으로 벼농사를 주로 짓는 전형적인 산간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크고 작은 공장들이 즐비하게 들어서는 공업 지역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산업화의 영향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 노인 인구 비율이 높다.

1940년경 산막골저수지를 만들어 농사에 이용하였고, 2000년경에는 관정을 시설하여 풍부한 지하수로 농사를 지어 왔다. 지금은 소수의 주민들이 벼농사와 콩·참깨·고추 농사를 지을 뿐 대부분의 주민들은 공장에서 임금 노동자로 생활하고 있다. 농민들도 농한기에는 공장에서 소득을 올리고 있다.

1960년대 초반부터 잠업 모범 마을이 되면서 양잠업이 한때 주민들의 주된 수입원이 되었고, 2000년 이후 이웃 대망리의 영향을 받아 인삼 재배를 시작하여 지금은 농가의 중심 작물이 되었다.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마을 안길 포장 공사를 하였고, 편의 시설로 경로당·마을 회관·쉼터가 있으며, 산업체로 진성산업(합성수지 제조)·(주)오일전자통신(전자관 제조)·선산상회(가공식품 도매) 등이 있다. 유적으로 대수당(大樹堂) 허신생(許申生)의 추모소인 경명재가 있다.

주요 지명으로 재샘(일명 장군샘), 삼형제바위, 청년끝산, 장군바위(일명 장군집) 등이 있다. 재샘은 파산리 동쪽에 있는 샘으로 지름 3m가량의 평평한 뚜껑바위 밑에 직사각형의 돌을 쌓아 만들었으며, 마을이 형성될 때 생긴 것으로 여겨진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재샘에는 은 바가지가 떠 있어 그믐날 밤이면 샘 언저리에 은 바가지가 부딪혀 은잔 소리가 난다고 한다. 또 아무리 물을 퍼내도 마르지 않으며, 병든 사람이 샘물을 마시면 병이 씻은 듯이 낫고, 샘에서 공들여 제사를 지내면 모든 재앙이 없어진다고 한다.

삼형제바위는 세 개의 바위를 일컫는데 큰형바위는 파산리 282번지에, 두 개의 동생바위는 각각 파산리 233번지와 194번지에 있다. 이 바위를 멸시하면 마을에 재앙이 닥치고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는 말이 있어 지금도 신성하게 여긴다. 청년끝산은 마을 뒷산으로 임진왜란 때 허신생이 왜군과 싸울 때 이곳에 있는 참나무를 뽑아 왜군을 물리쳤다고 하여 후에 붙여진 산 이름이다.

장군바위는 파산리 297번지 위쪽에 있는 큰 바위이다. 왜군들이 허신생을 잡으려고 하자 산 밑 바위에 피신처를 만들고 왜군과 싸워 많은 공을 세웠는데, 후에 사람들이 이 바위를 장군바위 또는 장군집이라 하였다. 마을에서 큰일을 하거나 마을 주민이 개인적으로 큰일을 할 때에 먼저 장군바위에 와서 치성을 드려야 바라던 일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장군바위가 있는 산은 방구등이라고 한다. 대망리의 덕산황씨들도 허신생을 ‘조상을 잘 지켜 준 은혜로운 사람’으로 여겨 오랫동안 허신생의 묘소에 참배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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