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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0736
한자 仁同縣
영어음역 Indong-hyeon
이칭/별칭 옥산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박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
관련문헌 『삼국사기』|『고려사』|『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대동지지』|『옥산지』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 지역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지명.

[개설]

인동은 외부의 문물을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낙동강 연안에 위치한 교통 요지에 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문명이 발전하였으며, 풍부한 물산과 군사적 요충지로 인해 조선 후기까지 도호부 관할 하에 있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 철도가 약목을 통과하게 되고 운하 교역이 감소하면서 칠곡과 선산에 편입되었다.

[명칭유래]

이 지역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동화현(斯同火縣), 이동(爾同) 등이 사용되었으나 신라 경덕왕(742~764) 때 수동현(壽同縣)이라 하였다. 고려 때 인주목(仁州牧)이 되었으며, 인동(仁同)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로 보인다. 인동현의 동쪽에 있었던 옥산(玉山)에서 따서 별호를 옥산이라고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인동 지역은 삼한시대에는 진한에 속하였는데, 진한의 12개 소국 가운데 군미국(軍彌國)의 관할 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군미국검성골에서 시작하여 지금의 구미시 황상동 일대의 평원 지대에까지 영역을 넓혀 나갔을 것이나 5세기경 신라가 이 지역에 대하여 위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3~4세기경 신라에 흡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사동화현(斯同火縣)이라고 하였으며, 그후 신라 35대 경덕왕 때 수동현(壽同縣)으로 개칭하였다.

고려 때 인주목이 되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상주목 아래 지금의 성주인 경산부(京山府)의 한 속현이 되었다. 그러다가 1390년(공양왕 2)에 처음으로 감무를 설치하고 약목현을 속현으로 두어 독자적인 행정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13년(태종 13)에 지방제도를 개정하면서 감무를 혁파하고 종6품의 현감을 두었다. 1605년(선조 38) 7월 도원수 한준겸(韓浚謙)의 계청에 의해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 6월 23일 지방제도의 개정에 따라 도호부에서 4등군이 되었으며, 읍내면·북면·동면·장곡면·문량면·석적면·북삼면·약목면·기산면 등 9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4년 3월 1일 지방제도 개편으로 인동군 관할 9개 면과 칠곡군을 합해 칠곡군으로 하고 인동군 관할의 읍내면과 북면을 합해 인동면이 되었다. 1977년 3월 2일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을 관할하는 구미출장소에 편입되었다. 이어 1978년 2월 15일 구미시로 승격하면서 인동읍이 되었다.

[관련기록]

『대동지지(大東地志)』 인동조에 “본래 신라의 사동화현이던 것을 경덕왕 16년 수동으로 고치고 성산군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태조 23년 인동으로 고쳤으며, 현종 9년 경산부에 소속시켰다. 공양왕 2년 감무를 두었으며 약목을 병합시켰다. 본조 태종 13년 현감으로 고쳤다. 선조 37년 도호부 겸 조방장으로 올렸다(本新羅斯同火 景德王十六年改壽同爲星山郡領縣 高麗太祖二十三年改仁同 顯宗九年屬京山府 恭讓王二年置監務以若木來倂 本朝太宗十三年改縣監 宣祖三十七年陞都護府兼助防將)”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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