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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통동 욕담 김선생 영귀대 암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0947
한자 南通洞浴潭金先生詠歸臺岩刻
영어의미역 Petroglyphs Written with Yeongguidae in Namtong-d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암각
건립시기/연도 조선 후기
관련인물 김공(金羾)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해운사 법당 뒤편지도보기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도선굴 아래에 새겨진 글자.

[건립경위]

조선시대 1592년(선조 25)에 경상좌도 함안 사근도역(沙斤道驛) 찰방(察訪)을 지낸 김종무(金宗武)의 막내아들인 욕담(浴潭) 김공(金羾)은 20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도선굴(道詵窟) 아래 움집을 짓고 은둔하였다. 조정에서 아버지 김종무의 공훈으로 벼슬에 제수해도 “벼슬하러 한양 가는 길은 상주 땅을 밟아야 하니, 아버지의 시신도 거두지 못한 불효자가 어찌 그 길을 밟아 또 다시 불효를 저지르리요.” 하고 사양하고 평생을 얇은 의복과 고기없는 반찬으로 일관하니 후인들이 그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새긴 것이다.

[위치]

남통동 욕담 김선생 영귀대 암각금오산 도선굴 아래에 있다.

[형태]

세류폭포 절벽에 ‘욕담 김선생 영귀대‘라는 큼직한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 글은 장현광의 것으로서, 김공의 후손이 여기에 각자(刻字)한 것이 아닌가 전해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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