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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012
한자 金寧
영어음역 Gim Nyeong
이칭/별칭 여화,돈봉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임천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임천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567년연표보기
몰년 1651년연표보기
본관 일선
대표관직 예안현감

[정의]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일선. 자는 여화(汝和), 호는 돈봉(遯峰). 오로재(吾老齋) 김성미(金成美)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습독(習讀) 김숭렬(金崇烈)이다.

[활동사항]

김녕은 1610년(광해군 2)에 진사가 되었고, 1612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인목대비를 폐하자는 논의가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623년 인조반정 뒤 임실현감으로 등용되었으나 같은 해 파직되었다가 다시 전적·사예·예안현감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 국왕이 남한산성에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71세의 고령으로 의병을 규합하여 이끌고 가다가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말을 듣고 돌아왔다. 1611년 이후 정인홍(鄭仁弘) 계열과 일반 사림들 사이에 학통을 둘러싸고 논전이 벌어지자 스승 정구(鄭逑)를 변호하는 명문의 「한강선생변무소(寒岡先生辨誣疏)」를 올렸다. 성품이 청렴하고 가진 재물이 없어 습격한 도둑들을 감동시켰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학문과 사상]

한강 정구에게서 『근사록』과 『태극도설』을 수업하였고, 여헌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학문과 덕행을 쌓았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돈봉집(遯峰集)』이 전하고 있으며, 작품으로는 「도해부(蹈海賦)」가 있다.

[상훈과 추모]

1796년(정조 20) 사림들이 김녕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승암서원(勝岩書院)에 향사하였으나 2014년 현재 승암서원(勝岩書院)은 사라지고 마을 뒤편에 돈봉재(遯峰齋)가 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8.27 [상훈과 추모] 수정 및 보완 <변경 전> 승암서원(勝岩書院)에 향사하였다. <변경 후> 승암서원(勝岩書院)에 향사하였으나 2014년 현재 승암서원(勝岩書院)은 사라지고 마을 뒤편에 돈봉재(遯峰齋)가 있다.
이용자 의견
심** 며칠 전에 가 보니 "승암서원"은 사라지고,마을 뒤편에 "돈봉재"가 있더군요.
  • 답변
  • 디지털구미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 및 보완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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