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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218
한자 尹命烈
영어음역 Yun Myeongyeol
이칭/별칭 언국(彦國),석유(石有),충헌(忠憲)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762년연표보기
몰년 1832년연표보기
본관 해평
대표관직 동지중추부사

[정의]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언국(彦國), 호는 석유(石有). 아버지는 윤면동(尹冕東), 생부는 윤기동(尹紀東)이다.

[활동사항]

윤명렬은 1795년(정조 19) 문과에 급제하였다. 감찰, 지평, 장령, 집의 등을 거쳐 우승지에 올랐다. 1805년(순조 5) 이래 동래부사, 광주목사, 형조참의, 대사간, 좌승지를 역임하였다. 1821년 호조참판으로 동지부사(冬至副使)가 되어 청(淸)에 다녀와서 병조참판이 되었으며 동지경연사, 동지돈령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823년 강원도관찰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고,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윤명렬은 평소에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해 관직 생활 40년 동안 내외 요직을 거쳤지만 집안의 재산이 불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세속적인 권세와 이익, 그리고 번잡하고 화려한 것을 조금도 부러워하는 기색 없이 예사로 보아 넘겼다.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충후장덕(忠厚長德)으로 추장했다고 한다. 유고 일부분이 집안에 전해 온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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