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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426
한자 洪坃
영어음역 Hong Hu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경상도관찰사
성별
대표관직 공조판서(工曹判書)

[정의]

개항기의 문신.

[활동사항]

음사(蔭仕)로 관직에 올라 1873년(고종 10) 대사간이 되었으며, 이듬해에 대사간에 재임명되었다가 곧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이 해에 흥선대원군을 등에 업고 대일 외교를 담당하던 부산훈도(釜山訓導) 안동준(安東晙)이 백성의 재물을 빼앗아 치부했다고 계를 올려 처형당하도록 하였다.

1875년에는 지방의 부호와 사족들에 죄를 씌워 재물을 빼앗고 수많은 세납물을 갖가지 방법으로 횡령하여 15만 냥 이상을 축재하여 경상도민의 원성이 높았다. 이에 부호군 이붕순(李鵬純)이 상소를 올려 처벌을 요청하였으나, 고종과 민씨 척족의 비호 아래 오히려 이붕순의 무고를 주장하였다. 같은 해 울산에서 수령과 이서배(吏胥輩)의 혹심한 수탈로 농민들이 봉기하여 동헌을 습격하고 감옥을 파괴하자 울산부사 정홍대를 파직시켰는데, 이 사건이 일어난 책임을 물어 녹봉이 일부 감해졌다.

1876년 경상도관찰사에서 물러난 뒤 경상도암행어사 홍대중(洪大重)이 그의 탐학과 공물 횡령을 보고함으로써 강진현 고금도로 위리안치되었다. 그 뒤 사간원과 사헌부 등에서 죄상에 비추어 처벌이 약하다고 하여 죄를 더할 것을 요청하는 계(啓)를 여러 차례 올렸으나, 고종은 처벌을 미루었다. 1879년(고종 16) 왕명으로 풀려나고 사면 받아 좌부승지가 되었다. 1882년 임오군란 때에 난군(亂軍)에게 가옥을 파괴당하기도 하였다. 1884년 행호군 재직시 가자(加資) 받고 이어 공조판서에 올랐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10.07 항목명 수정 <변경 전>홍완 洪玩 <변경 후>홍훈 洪坃
이용자 의견
심** "홍 완(洪 玩)"이 아니라 "홍 훈(洪 坃)"이네요. "坃(훈:질나팔)"을 컴퓨터에는 "塤(훈:질나팔)"이라는 글자로 나오네요.
  • 답변
  • 디지털구미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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