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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427
한자 洪應
영어음역 Hong Eung
이칭/별칭 응지(應之),휴휴당(休休堂),익성 부원군(益城府院君)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428년연표보기
몰년 1492년연표보기
본관 남양
대표관직 좌의정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에 불천위 사당이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응지(應之), 호는 휴휴당(休休堂).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세종조부터 성종조까지 살았던 문인으로 문장과 글씨에 능했으며, 이름난 재상이었다. 1471년(성종 2) 익성 부원군(益城府院君)에 봉해졌다.

[가계]

증조할아버지는 홍유용(洪有龍), 할아버지는 증 영 중추부사 홍덕보(洪德輔)이고, 아버지는 한성 부윤 홍심(洪深)이며, 어머니는 이조 참의 윤규(尹珪)의 딸이다. 아들 홍상(1457~1513년)은 덕종의 딸 명숙 공주(明淑公主)와 혼인하여 부마로 당양군(唐陽君)에 봉해졌으며,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총관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활동 사항]

1451년(문종 1) 증광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도승지(都承旨), 형조 판서(刑曹判書), 이조 판서(吏曹判書), 좌찬성(左贊成), 4도 순찰사(四道巡察使), 우의정(右議政)을 거쳐 1485년(성종 16)에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좌의정 겸 영 경연사 감춘추관사 세자부(左議政兼領經筵事監春秋舘事世子傅)를 역임 하였고, 1471년에는 익성 부원군(益城府院君)에 봉해졌다.

[학문과 저술]

1463년(세조 9)에 영응 대군(永膺大君)과 함께 『명황계감(明皇戒鑑)』을 국역하였다. 세조의 명을 받아 『경국대전』 편찬에 참여하였다.

[묘소]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에 있으며 신도비는 통정대부 예조참의 지제교 이숙함이 찬(撰)하고 사제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홍흥이 글을 짓고 글씨를 썼다.

[상훈과 추모]

1468년(예종 원년)에는 추충 정난 익대 공신(推忠定難翊戴功臣), 1471년에는 순성명량 좌리공신(純誠明亮佐理功臣號)의 호를 받았다. 성종의 묘정(廟廷)에 배향되었고,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다곡길 373-18에 휴휴당 부조묘(不祧廟)가 있다. 휴휴당 부조묘는 홍응을 기리기 위한 불천위(不遷位)사당(祠堂)으로 당양리(唐陽里)에 창건되었던 것을 1630년경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후손들에 의해 수차례의 중수를 거쳐 1928년 중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2007년 8월 9일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527호로 지정되었다. 매년 음력 4월4일에는 이곳 사당에 전국의 후손들이 모여 춘향제[기제]를 봉행하고 양력 10월 둘째 일요일에는 묘소가 있는 구리 아산사에서 추향제를 봉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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