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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유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528
한자 仁同劉氏
영어의미역 Indong Yu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구미 지역 일원

[정의]

인동을 본관으로 하여 경상북도 구미지역에 살았던 토성의 하나.

[개설]

인동은 신라시대에 사동화현(斯洞火縣)이라 하였고, 그 후에 수동현으로 개칭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인 인동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경산에서 분리되면서 처음으로 지방 수령인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편으로 감무를 혁파하고 현감(縣監)을 두었다.

1604년(선조 37) 4월 찰리사(察理使) 곽재우(郭再祐)에 의하여 천생산성의 외성이 축조된 후 관방(關防)의 요새로 부각됨에 따라 1605년(선조 38) 7월 도원수 한준겸(韓浚謙)의 계청에 의하여 도호부로 승격됨과 동시에 도호부사가 조방장(助防將)을 겸임하게 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명 제98호에 따라 지방제도가 개정되면서 인동은 군(郡; 4등 군)이 되었다가 1914년 3월 인동군 관할 9개 면이 칠곡군에 병합되었다. 1977년 3월 경상북도 구미출장소의 행정 관할로 되었다가 1978년 2월 구미시에 편입되었다.

[연원]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등 지리지에 인동현 토성으로 장(張)·유(兪)·유(劉)·심(沈)·고(高)가 기록되어 있다. 인동의 속현이었던 약목현(若木縣)의 토성으로는 이(李)·유(柳)·한(韓), 의흥현(義興縣)의 토성으로는 전(全)·박(朴)·이(李)·김(金)·백씨(白氏), 부계현(缶溪縣)의 토성으로는 예(芮)·홍(洪)·유(兪)·김(金)·전씨(錢氏)가 있었다. 인동유씨(仁同劉氏)는 인동 토박이 성으로서 여타 자료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각종 지리지 편찬 당시에는 인동을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에 거주하였던 것 같으나 어느 시기에 타읍 또는 타도로 이주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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