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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972
한자 阿度
영어음역 Ado
이칭/별칭 아도(我道),아두(阿頭)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집필자 한기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승려
출신지 고구려
성별

[정의]

삼국시대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개설]

아도는 선산 사람 모례(毛禮)를 후견인으로 하여 신라 왕성에 불교를 전도한 승려로서 후에 신라 불교 초전자로 추모되었다.

[가계]

별명은 아도(我道)·아두(阿頭). 아버지는 정시(正始) 년간에 고구려에 사신으로 왔던 조위인(曹魏人) 아굴마(我堀摩), 어머니는 고구려인 고도령(高道寧)이다.

[활동사항]

『삼국유사』의 「아도본비(我道本碑)」에 의하면, 아도는 고구려에서 태어났으며 5세가 되었을 때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출가하여 16세에 위(魏)나라로 가서 아굴마를 만나고, 현창(玄彰) 화상의 강석(講席)에서 공부한 뒤 19세에 귀국하였다. 263년(미추왕 2)에 신라로 가서 경주의 서리(西里)에 머무르며 대궐에 들어가서 불교를 행하기를 청하였으나, 사람들이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라 하여 꺼려 하였고 심지어는 죽이려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래서 화를 피해 일선현(一善縣) 모례의 집(현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 987번지로 추정되며 ‘신라불교 초전지’라고 부름)에 숨어 살았다.

264년에 성국공주(成國公主)가 병이 들어 무당과 의원이 치료하였으나 효험이 없자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 의사를 구하였다. 이때 대궐로 들어가 병을 치료하니 왕이 대단히 기뻐하며 아도의 소원을 묻자, 천경림에 절을 세워 불교를 크게 일으켜 나라의 복을 비는 것이 소원이라 하였으므로 왕이 허락하였다. 띠로 집을 덮고 흥륜사(興輪寺)를 창건한 뒤 그곳에서 불법을 강연하였으며 모례의 누이인 사씨(史氏)도 이때 여승이 되어 삼천기에 절을 짓고 영흥사(永興寺)라 하였다. 얼마 뒤 미추왕이 죽자 사람들이 그를 해하려 하였으므로 모례의 집으로 돌아와 무덤을 만든 다음 들어가서 문을 닫고 자살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의 다른 기록과 『삼국사기』에 의하면, 아도가 신라 소지왕 때 시자 3인을 데리고 일선군 모례의 집에 와서 있다가 몇 년 뒤 병 없이 죽었고, 그의 시자 3인이 경률(經律)을 강독하여 가끔 믿는 이가 있었다고 하였다. 또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는 서축(西竺) 사람이라고도 하고, 오(吳)나라에서 온 사람이라고도 전한다.

[상훈과 추모]

신라 중대의 한나마(韓奈麻) 김용행(金用行)이 아도화상비(阿道和尙碑)의 비문을 찬술하여 추모하였다. 신라 하대에는 흥륜사 금당(金堂)에 십성(十聖)을 봉안 추모할 때 동쪽 벽에 앉아 서쪽을 향한 소조상 첫 번째로 모셔져 국가적 추모 대상이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박인량(朴寅亮)이 『수이전(殊異傳)』에서, 각훈(覺訓)이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서, 고득상(高得相)이 영사시(詠史詩)에서, 일연(一然)이 『삼국유사』에서 행적을 남기고 추모하였다. 17세기에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에 있는 도리사(桃梨寺)아도화상사적비(阿道和尙事蹟碑)가 세워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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