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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2006
한자 孝子
영어의미역 Dutiful Son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우인수

[정의]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부모를 극진하게 섬긴 아들.

[개설]

가계(家系)의 연속이 중요시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족제도 하에서는, 넓게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좁게는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가 가정 내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흔히 부자관계(父子關係)로 표현되는 이 관계는, 부모와 자식이 각기 독립적인 인격자임을 상호간에 인정하는 바탕에서 발생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자식의 부모에 대한 일방적인 예속과 종속에 따른 상하관계였다. 부자관계를 지배하는 행위 규범은 효(孝) 또는 효도(孝道)로 집약될 수 있다.

자식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존경하는 태도를 배우고 몸에 익힌다. 아버지의 경우는 한 가족의 우두머리로서 자식에 대한 엄격한 훈육을 담당할 지배적인 인물로 모시고 섬길 것이 요구되지만, 어머니의 경우에는 인자하고 너그럽고 별로 무서워할 것이 없는 모성상(母性像)이 어려서부터 심어진다. 이런 태도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친족 호칭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전통 사회에서는 아버지에게 엄친(嚴親)·가엄(家嚴) 등과 같은 엄격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는 호칭이 사용되었으며, 이와는 반대로 어머니는 자주(慈主)·자친(慈親)·자본(慈本)·자정(慈庭)·노자(老慈)·자당(慈堂)·선자(先慈)·선자당(先慈堂) 등과 같은 부드럽고 인자하고도 자상한 이미지가 부각된 용어로 호칭되었음은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지배한 전통적인 규범으로서의 효 또는 효도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정성껏 모시는 것뿐만 아니라 사망한 뒤에도 극진히 제사 지내는 것 등을 포함한다. 자식의 모든 행동은 효도와 관련하여 평가되었고, 자식은 그의 일생을 통하여 효도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부모의 뜻이 부당한 것이라고 판단되면 그 잘못을 지적하고 ‘꼭 들으시도록’ 간청하라고 하였다. “세 번 간청하여 듣지 않으시면 부모의 뜻을 그대로 따르라.”는 말은 조선시대의 각종 교과서에 포함되어 자녀 교육에 누누이 강조된 교훈 중의 하나였다.

효도를 중요시한 조선시대의 문화적인 전통은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효자를 낳았고, 그들의 지극한 효심은 학자들의 문집에 담기거나 효자비의 비문에 실려서 가문의 자랑거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덕행의 표준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대등한 인간관계에 기초해서 우러난 행동은 아니었다. 효나 열(烈)의 대상은 평등한 관계에 있는 어느 한 쪽이 아니라 상하관계의 상위에 있는 부모 또는 시부모 및 남편이었다. 이것은 곧 전통 사회의 가족생활이 부모 중심이요, 남편 중심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부모가 사망한 뒤 삼년상 기간에 여막 생활을 하는 일은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면 흔히 따랐던 관습이었다.

효도란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서의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일상생활, 즉 가정생활의 조화 있는 운영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였으며, 이 장치는 적어도 전통 사회에서는 가정생활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사회의 질서 확립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는 물질 중시의 풍조가 만연되면서 전통 사회의 미풍양속이 사라져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로 나타나자 인간성 회복의 한 수단으로 효도를 강조하게 되었다.

[사례]

효행의 본보기로 기록에 남아 있는 사례들 중에서 특히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면서 교화의 일익을 담당하였던 효자의 전형적인 행위는 자기희생적인 정신으로 사경의 부모를 구출해낸 효자들, 그리고 3년상 기간 중 여막 생활을 해낸 효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구미에도 많은 효자가 배출되어 국가로부터 정려가 내려지는 표창을 받았다. 평소 극진히 부모를 잘 모실 뿐 아니라 항상 말과 행동을 조심하여 욕이 부모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한 배숙기, 부모의 위급 시에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흐르는 피를 부모에게 드린 박진환과 최동필, 부모를 위해 철에 나지 않는 약재나 음식을 천신만고 끝에 하늘을 감동시켜 구한 김선초·김복언·정익·김음·강윤하 등 많은 사례가 있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여막살이 3년 동안 한 번도 집에 내려오지 않았음을 특기한 경우도 많았다. 장한·임재·김내근·이훈·김정태 등을 위시한 많은 사례가 조선시대 내내 이어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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