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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정십사경시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2893
한자 如此亭十四景詩逸
영어의미역 14Poetry of Yeochajeo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영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한시
작가 장학(張學)
창작연도/발표연도 조선시대

[정의]

조선시대 장학이 구미 지역에 건립한 여차정 주변의 아름다운 14경관을 읊은 한시.

[개설]

여차정(如此亭)은 1659년(효종 10)에 장학(張學)이 건립한 정자로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다. 현재 「여차정십사경시일」의 원문은 전하지 않고 다만 그 내용만이 전해 올 뿐이다.

[구성]

「여차정십사경시일」여차정 주변의 아름다운 14경관을 자연 현상 혹은 자연물과 특기 사항의 형식으로 제목을 설정한 다음, 그곳의 위치와 풍광의 아름다움을 기술하였다.

[내용]

「학교숙운(鶴嶠宿雲)」

학교(鶴嶠)는 여차정 동쪽에 있다. 하늘 가운데 높이 솟아 있다. 새벽 구름이 항상 아름답다.

「봉수조양(鳳峀朝陽)」

봉수(鳳峀)는 여차정 동남쪽에 있다. 해가 학교에 솟아나 붉은 광휘가 먼저 이 봉수 꼭대기를 비춘다. 바위에 걸쳐진 형상이 마치 봉황이 우뚝 선 듯한 까닭에 봉두암(鳳頭巖)이라고도 한다.

「금오청취(金烏晴翠)」

여차정 서쪽, 강의 오른쪽에 있다. 만 길 높이의 먹빛 산이 사철 같은 모양이다. 고려의 충신 길재(吉再, 1353~1419)가 은거하던 곳이며 조선조 경은(耕隱) 이맹전(李孟專, 1392~1480) 역시 이곳에 은거하였다.

「옥랑취연(玉浪炊烟)」

여차정 서남쪽, 금오산 아래 지주(砥柱)의 북쪽에 있다. 강마을이 선명히 보이고 연기가 들녘을 뒤덮는다.

「양림만풍(羊林晩風)」

여차정 남쪽에 있다. 숲은 부지암(不知巖)에서 시작되어 오강(吳江)에서 끝난다. 물길을 따라 있으며 사시사철 모두 아름다우며 늦가을 단풍이 들었을 때는 마치 붉은 비단을 펼쳐 놓은 듯 더욱 아름답다.

「추저어가(鶖渚漁歌)」

양림(羊林) 앞, 부지암 아래를 흘러 건도(乾島)에 이르러 두 개의 여울로 나뉜다. 추저(鶖渚)는 두 여울 사이에 물고기들이 모여드는 곳이어서 어부들이 모두 이곳에 모인다. 서로 화답하는 뱃노래 소리가 밤낮 끊이지 않는다.

「전탄모범(前灘暮帆)」

전탄(前灘)은 여차정 남쪽, 부지암 아래를 흘러 추저 가에 이른다. 봄·여름·가을 세 계절에는 장삿배들이 연이어 오르내린다.

「후사효종(後寺曉鍾)」

여차정 북쪽에 있다. 산모퉁이 물 구비에 몇 칸의 선사(禪寺)가 있고 늙은 중 네댓 명이 수도하며 독경한다.

「평포낙안(平浦落鴈)」

여차정 서남쪽, 강의 오른쪽, 비산(緋山)의 아래, 옥랑(玉浪) 앞에, 추저 위아래 아득히 펼쳐져 있어 한 번 바라보아도 끝이 없다. 가을의 강 물결은 모래보다 희며, 혼연히 한 빛깔이 된다. 봄바람 불고 꽃비 내릴 때 가녀린 풀 잎사귀들이 강물보다 푸르다. 주변의 절벽은 기러기 날아내릴 때 더욱 맑고 빼어나 보인다.

「세우고주(細雨孤舟)」

여차정 아래에도 배가 있고 부지암 아래쪽에도 배가 있어서 나그네들이 끊임없이 왕래한다. 또 작은 배는 어부를 싣고 오르내리거나 왕래하여 정자 주변의 승경을 이룬다. 부지암 나루와 정자 조금 먼 곳에 바야흐로 가랑비 내리고 미풍이 불며, 한 명의 뱃사공이 도롱이 입고 노를 저으며 왕래하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더욱 아름답다.

「십리명사(十里明沙)」

강의 오른쪽 이른바 낙안포(落鴈浦) 왼쪽에 있다. 깨끗하고 맑은 모래는, 낮에 보면 눈을 펼쳐 놓은 듯하고 밤에는 달빛이 어린 듯하다. 상하로 항상 십 리쯤 되는데 광채는 곱절이나 빛난다.

「천봉호설(千峯皓雪)」

조화(造化) 속에 있는 듯하여 아름다운 경관을 평범한 형태의 품격으로 논하기 어렵다. 그러나 바야흐로 삼라만상이 모습을 바꾸어 천 개의 봉우리가 하얗게 빛날 때 정자에 앉아 있으면 마치 하늘나라 백옥경(白玉京)의 최상층에 있는 듯하여 한 점 세속의 먼지나 괴로움도 일지 않고 마음을 착하게 한다.

「암대부지(巖對不知)」

부지암은 여차정 앞쪽에 있다. 동쪽에서 달려온 산이 곧장 물속으로 들어가 산이 다한 곳에서 돌이 솟아나 물속을 가로누워 있는 듯한 형상이다. 바위의 형세는 구불구불하면서도 평평하게 넓어 형상을 말로 다 나타낼 수 없다. 부지암 아래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이 도(道)를 강론하던 장소에 후인들이 서원을 세웠다.

「비간지주(碑看砥柱)」

비(碑)는 금오산 동쪽 기슭에 있으니 바로 길재의 신도비이다. 여차정 아래로 긴 강이 흘러 비 아래에 이른다. 정자에서 멀리 바라보면 바위 하나가 물속에 우뚝 솟아 물결 속에서도 꿋꿋이 굽히거나 흔들림 없는 기상으로 서 있으니, 진실로 이른바 “나를 일으킬 자는 어찌 다만 승경에 그칠 뿐이겠는가?”라는 말과 일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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