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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림리 상림 동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2997
한자 上林里上林洞祭
영어의미역 Sangrim Village Ritual in Sangrim-ri
이칭/별칭 당제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상림리 상림마을지도보기
집필자 석대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마을신앙|마을 제사
의례시기/일시 1월 2일(음력) 자정
의례장소 마을 앞 당산
신당/신체 당집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상림리 상림마을에서 음력 1월 2일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상림리 상림마을 동제는 15년 전까지 ‘당제’라 하여 마을 앞 당산에 있는 당집에서 매년 음력 1월 2일에 주민 공동으로 지내던 마을 제사였으나, 1992년 마을에 생기복덕이 맞는 사람이 없고 젊은 사람들이 싫어하여 중단되었다. 당집은 마을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서 허물지지기도 하고, 마을정비 사업을 하면서 없어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연원 및 변천]

상림리에는 관청에 물건이나 문서를 전달하는 상림역(上林驛)이 있었다. 역제도는 487년(신라 소지왕 9)부터 생긴 것으로, 관청의 물건이나 문서를 전달하는 것이 임무이며, 말 6필과 역리 227명이 이에 종사하였다. 또한 고려 때는 이곳에 말을 키우는 ‘말방아’와 국립여관인 상림원(上林院)이 있었다.

당제를 지내기 시작한 시기는 알 수 없으며, 김해배씨들이 마을을 처음 개척하면서 지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당집도 처음에는 현재 마을회관 자리에 있던 느티나무를 ‘당나무’라 부르며 지냈으나, “어느 해인가부터 제를 지낼 때마다 말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 이를 부정하게 본 마을에서 현재의 당산으로 당집을 지으며 옮겼다.”고 한다. 느티나무는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가지가 부러져 고사하고 말았다.

[신당/신체]

지붕은 기와를 얹었고 벽체는 흙으로 만든 1칸짜리 당집이 있었으나 마을정비 사업으로 당산과 함께 사라졌다.

[절차]

제관은 섣달 그믐날 생기복덕이 맞는 사람으로 제관 1명을 선정하였으며, 제관은 당일에만 기도를 드렸다. 제관은 초하룻날 차례를 지내고 금줄을 꼬아 황토와 함께 제당과 제관집에 쳤다. 제관은 이날 하루 동안 비린 것을 먹지 않으며 외출을 삼갔다.

제물은 밥·돼지 1마리·삼실과·탕·제주 등을 올렸다. 돼지는 6일 전쯤에 사 놓고 마을사람이 관리하다가 당집 앞에서 잡아 지냈다. 설 지내는 날 아침 일찍 제관이 장천시장으로 장을 보러 간다. 제의는 단잔배례 후 독축과 당신소지를 하고, 김해배씨·평해황씨·수원백씨·밀양손씨·김해김씨·현풍곽씨 등의 순으로 성씨소지를 올린다. 배례 후 철상한다.

[부대행사]

상림리 상림마을 동제를 마친 아침에 마을회관에 동민이 모여 음복을 하고 제관에게 수고했다고 절을 한다. 제비는 동자금으로 지내며, 부족하면 호당 일정액을 거출하였다.

[참고문헌]
  • 현지조사(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상림리, 2007: 조사자 류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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