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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응선 묘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860
한자 白膺善墓碑
영어음역 Baek Eungseon Myobi
영어의미역 Baek Eungseon's Tombstone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유적/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1156[신북로 303]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홍순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묘비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기미년 조천 만세 운동에 가담하였다가 투옥된 백응선을 기리는 묘비.

[개설]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가운데 제주도에서도 3월 21일 미밋동산에서, 22일 조천리에서, 23일 조천리 장터에서, 24일 함덕리에서 만세 운동이 펼쳐졌다.

일본 경찰은 주동자 23명을 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거했으며, 이때 체포된 백응선은 옥에서 나온 뒤 옥살이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이런 백응선을 기리기 위해 3년 뒤에 김시범 등이 백응선의 무덤에 비석을 세웠다.

[건립경위]

1921년 백응선을 제외한 투옥 동지 13명은 동미회(同味會)라는 친목 모임을 만들었는데, 이는 ‘미밋동산[味毛峙]의 동지(同志)’라는 뜻이다.

동미회 회원 13명은 뜻을 모아 제1차 사업으로 백응선의 묘비 건립을 서둘렀다. 이에 김시범(金時範)이 한문으로 글을 짓고 교래(橋來) 지경의 묘지에 ‘고백응선군지묘(故白膺善君之墓)’란 비를 세우고 측면에 동지 13명의 이름을 썼다.

[금석문]

비문은 “기미년 봄에 그대와 더불어 뜻을 같이 한 14명은 독립을 선포하다가 체포되어 복역을 마치고 그는 불귀객의 되었도다. 오호라 슬프다! 마음속에 새겨 말하노라. 아아! 백군이여 천명이런가, 운명이런가! 동지 14명은 바야흐로 투옥되었지만 조국 독립을 위하여 내 몸 버리기를 홍모(鴻毛)와 같이 가볍게 여겼는데 급기야 일편 단심 맹세한 뜻은 출옥일망정 옛날과 같도다. 동지들은 같이 죽지 못하고 타는 간장을 여미고 창자를 찢기지 못함이여. 아! 동지 13명은 군의 영전에 통곡하며 그대의 넋을 다소나마 위로하고자 짧은 돌에 글을 새기노라. 단기 4255년 임술 3월 일”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의와 평가]

백응선 묘비의 비문에는 일제를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일본 연호를 쓰지 않고 날짜에 단기를 표시하였다. 백응선 묘비는 산간 오지에 세워져 일제 당국의 눈을 피할 수 있었기에 광복 후까지 보존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독립유공 건국포장(褒章)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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