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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단 제사 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013
한자 山川壇祭祀-
영어음역 Sancheondan Jesateo
영어의미역 Sancheondan Alter Site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 375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동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적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 375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한라산 산신제를 비롯하여 여러 제사를 봉행했던 산천단의 옛 터.

[개설]

한라산 산신제의 내력을 살펴보면, 옛날에는 명산대천에 제 드리는 일을 아주 중요한 국사로 삼아 모든 산천을 하나하나 등재하고, 격식을 갖추어 『오례의』라는 책을 만들었는데 한라산은 제외되어 있었다.

이에 1703년(숙종 29) 당시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이 조정에 ‘명상대천의 소사까지도 게재되었는데, 한라산만 유독 누락되었으니 조치를 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조정에서는 이형상 제주목사의 장계를 놓고 어전 회의를 열어 여러 대신의 의견을 물었으나 왈가왈부하여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었다.

이에 영의정 윤지완이 “국전에 등재되지 않은 제례를 이제와 강행하기는 곤란하며, 그렇다고 명산에 제례를 지내지 않은 것도 잘못된 일이다. 제주는 내륙 지방과 다른 위치에 있는 점을 고려하여 조정에서는 향축만 보내고, 목사로 하여금 제를 봉행하도록 아뢰었다. 이에 숙종이 이를 윤허함에 따라 예조는 치악산 및 계룡산의 산신제규에 의해 제일은 2월 7일로 정하여 시행하도록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 후 1793년(정조 17) 11월 심낙수(沈樂洙)가 제주어사로 내려오게 되자 향축을 마련하여 주고 한라산 산신제를 봉행하게 하였다.

[변천]

한라산 산신제는 처음 백록담에서 치러졌는데, 1470년(성종 1) 제주목사 이약동이 세운 한라산신고선비(漢拏山神古禪碑)와 『탐라기년(耽羅紀年)』 등의 문헌에 따르면 ‘한라산신제를 해마다 백록담에서 봉행하므로 추위로 얼어 죽는 사람이 많아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약동 제주목사가 제사를 지내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희생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제단을 백록담에서 산천단으로 옮겨 봉제하게 되었다’는 내력을 담고 있다.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위치하고 있다.

[현황]

산천단에는 한라산신에게 제를 올리던 오래된 제단과 비석이 남아 있다. 산천단 제사 터의 표지석에는 ‘이곳은 예로부터 산천제를 비롯하여 여러 제사를 봉행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1470년(성종 1년) 이약동 제주목사가 세운 한라산신묘를 비롯해 농사의 재해예방을 기원하는 포신제, 비를 내려줄 것을 비는 기우제 등을 올리는 곳’이라고 쓰여 있다.

산천단 안에는 이약동이 건립한 한라산신고선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는 1997년 홍정표가 발굴하여 세운 것이며, ‘목사 이약동선생한라산신단기적비(牧使李約東先生漢拏山神壇紀蹟碑)’도 세워져 있다.

산천단 제사 터 주위에는 수령 600년이 넘는 곰솔(천연기념물 제160호) 8그루가 산신제를 지냈던 신성함을 더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목석원(제주기념물 제25호)과 관음사 등 관광지와 제주대학교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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