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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선주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1479
한자 濟州-先住民
영어음역 Jejuui Seonjumin
영어의미역 Natives of Jeju
이칭/별칭 원주족(原住族),선사인(先史人)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김동전

[정의]

제주도 사람들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원주족.

[개설]

제주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 그 선사인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종족인가에 관하여는 많은 주장이 있다. 제주도의 원주족과 관련한 논란은 많으나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은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선사 유적을 통해 본 선주민]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 유적은 애월읍 어음리에 있는 어음동굴 유적이다. 1973년에 처음 발견된 이 동굴에서 수집된 유물을 보면 황곰과 붉은 사슴, 노루, 그밖의 동물뼈 화석과 현무암제의 인공박편, 골각기, 목탄 등 50여 점에 달한다.

이 가운데 황곰의 경우는 거의 완전에 가까운 골체 화석이었으며, 그밖에 사슴 등 동물뼈의 화석 가운데는 석기를 사용했던 흔적이 남아 있어 선사인이 먹고 버린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유적의 편년을 고고학자들은 대체로 구석기 중기에 해당하는 6~7만 년 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 동굴 지표용암 사이에서 나온 골각기와 석기 조각이 구석기 중기 문화인인 무스테리안의 전형적인 양식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동굴 유적의 발견으로 제주도에도 구석기인이 살았던 사실이 증명되었으나 이때는 제주도가 섬이 되기 이전의 일로, 특히 황곰이 살았던 사실은 제주도가 후빙기 이전에는 대륙과 연륙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해 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밖에도 서귀포 바위그늘 유적 등 구석기 유적이 몇 기 더 발견되고 있어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제주에는 선사인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이때 살았던 구석기인을 제주인의 조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 뒤에도 제주도에서는 화산 활동이 계속되었으며, 그럴 때에는 섬이 되기 이전이었으므로 이동이나 피난도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신석기 유적을 통해 본 선주민]

제주인의 조상이 될 수 있는 선주민은 신석기인 이후로 찾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이때는 제주도가 섬이 되고 있을 때였으므로 집단 이동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이동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인류의 이동이나 역사의 징후 등으로 보아 제주도에서도 몇 차례의 이동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제주도가 언제 섬이 되는가부터 보기로 하자. 대체로 그 시기는 제4기 홍적세의 빙하 시대가 끝나고 충적세로 접어드는 시기로 보고 있다. 지금부터 약 1만 년 전으로 추정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때 빙하가 녹으면서 동북아시아에서도 해수면이 약 130m 이상 상승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한반도에 붙어 있던 제주도가 섬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때는 또 구석기 시대가 끝나고 신석기 시대가 열릴 무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제주도에서는 제주 고산리 유적이 형성되고 있을 무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고산리에 거주했던 신석기 집단은 섬이 된 뒤에도 계속 눌러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

제주 고산리 유적이 발견된 것은 1987년이었는데, 그뒤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성형석기 5천여 점, 융기문토기·고산리식 민무늬 토기 등 1천여 점, 석촉·찌르개·긁개·홈날·뚜르개·세석기 등 총 10만여 점에 이르는 출토물을 수집했다. 그 유물 본포 범위만 보아도 15만㎡에 이르는 것으로, 매우 큰 집단이 거주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신석기 시대 이후의 유적은 제주 고산리 유적 외에도 제주도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제주시 관내에서만 보아도 용담동 유적을 위시하여 삼양동 유적, 외도동 유적, 오라동 유적, 도남동 유적 등 많은 유적이 분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 유적은 대체로 BC 7,000년경부터 BC 1세기에 이르는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에 걸친 유적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유적의 발견으로 보아 제주도에는 제주시를 중심으로 제주도 전역에 걸쳐 선사인들이 거주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집단 유적 상태를 보면 신석기 시대에는 소수 집단이 흩어져 거주하던 것이 청동기 시대 이후로 오면 대거 집단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농목 문화가 발달하면서 집단 생활의 필요를 느끼게 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선사인들은 어떤 문화의 전파로를 타고 제주도에 들어온 어떤 종족일까? 여기에 대한 학자 간의 의견 차이는 크다.

o최남선: 제주도의 지명들은 대부분 아이누어(語)와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가 있다. 제주도에는 먼저 아이누족이 거쳐간 것으로 추정되며, 뒤이어 여러 종족들이 들어온 것으로 본다.

o김태능: 일본 열도와 큐슈 지방에 살았던 고루보구족이 들어와 탐라의 선민이 되었다고 본다. 그 뒤 항해술의 발달에 따라 삼한 지방에서도 들어왔으며, 지배족은 고려부여족으로 본다.

o도리이: 제주인의 혈통은 그 절반이 일본족과 같다. 용모·골격·기질 등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가 있으며, 삼성과 관련한 설화에서도 그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o이와모토: 해신족이 남방으로부터 제주도로 들어왔다가 변한으로 들어가며 또 일부는 큐슈·쓰시마를 거쳐 변한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제주도, 고도, 뷱큐슈, 쓰시마, 변한 등에 해신족이 분포된다.

o츠보이: 탐라의 어원은 ‘대양 중의 섬’이라는 세망어(語)에서 나왔다고 본다. 이로 미루어 제주도에는 세망족[말래카의 네그리트족]이 북상하여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o이병도: 제주 원주민은 주로 한반도 본토에서 이주해 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머리를 깎은 주호족의 표현은 일부 포착민을 부로(俘虜)로 삼은 고대 풍속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o박용후: 탐라 원주민은 언어, 토기, 고인돌 등 문화 양식이나 지리적 환경으로 보아 북방계통 이족이라고 할 수 있고, 한반도에서 남하한 한족의 예맥계 부족 혹은 진인이라고 생각된다.

o이창환: 태고의 조선족이 한족이 되고 한족은 한족과 합하게 된다. 한편 한족은 마한족에 전하며 마한족이 한족에서 유래한 변한족과 합하여 세 갈래로 나뉘었는데 그 중 일파가 탐라족이다.

o이즈미: 신체 형질을 토대로 살펴볼 때 제주도인은 본질적으로 남한인과 같다고 하겠다. 특히 두부의 측정치로 볼 때 몽고인과 아주 닮았고 일본과 운남과도 같은 관계가 있으나 이들 나라에서 귀화했다고 볼 수는 없겠다.

석주명: 제주족들은 언어, 전설, 성씨 등 여러 가지 공통성을 발견할 수 있어 해남도 여족이 유래를 고찰할 수 있다. 그밖에 유구, 안남, 비도, 말래카 등 남방 등 남방 도서족과도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어 깊은 관계가 있었다고 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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