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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문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1560
한자 南平文氏
영어음역 Nampyeong Munssi
영어의미역 Namyeong Mu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집필자 김동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시기/연도 1194년(명종 24)연표보기
성씨시조 문다성(文多省)
입향시조 문탁(文晫)|문신공(文信公)

[정의]

문다성을 시조로 하고 문탁과 문신공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개설]

남평문씨는 고려 1197년(명종 24)에 제주에 입도한 기록으로 보아 고·양·부 3개 성씨를 제외하고는 제일 먼저 입도한 성씨임을 알 수 있다.

[연원]

남평문씨의 시조는 신라 자비왕(慈悲王) 때 사람인 문다성(文多省)이다. 문다성(文多省)의 출생에 대해서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당시 전라도 남평현 동쪽에 큰 연못이 있었고, 그 연못 바로 옆에 천 길이나 되는 큰 바위가 솟아 있었다.

하루는 고을 수령이 그 바위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그 바위가 갑자기 오색 채운으로 감싸이면서 문득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히 여긴 수령이 바위 위에 올라가 보니 돌상자 속에 피부가 옥설(玉雪)같이 맑고 용모가 준수하게 생긴 어린 아이가 들어 있었다.

수령이 이 아이를 거두어 기르니 나이 5세에 문사에 저절로 통달하고 지략이 뛰어날 뿐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깨닫는 총기가 있는지라 성을 문(文)이라 하고 이름을 다성(多省)이라 하였다.

본관은 시조 문다성이 대장군을 거쳐 삼중대광 삼한벽상공신에오르고 남평백에 봉해졌기 때문에 남평으로 관적하였다. 그러나 그 후 문헌이 실전되어 대수를 헤아리지 못하고, 문공원(文公元)·문공유(文公裕) 형제의 묘지명에 의해 고려 숙종 때 우산기상시를 지낸 문익(文翼)을 중조 1세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입향경위]

문탁(文晫)은 시조 문다성(文多省)의 19세손으로 1160년(의종 14)에 출생하여 과거에 급제한 후 좌정언에 올라 대사마대원수(大司馬大元帥)를 거쳐 대제학이 되었다. 1194년(명종 24)에 탐라국에 파견되어 흥학(興學)의 기틀을 마련했고 중앙 문물을 제주에 전파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다른 입도조인 문신공(文信公)은 중시조 문익(文翼)의 15세손으로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생하였다. 세조세조의 왕위 찬탈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용돌이 속에서 이에 연루되어 입도하여 제주목 삼도2동에 정착하였다. 입도 후에 농사를 지으며 은둔 생활을 하였다.

[세거현황]

제주도에 살고 있는 남평문씨충숙공(忠肅公) 문극겸(文克謙)의 후손들로 순평군(順平君) 문달한(文達漢)충선공(忠宣公) 문익점(文益漸)의 후손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관련유적]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서너 마장쯤 가면 장자지라는 큰 못이 있고, 그 곁에 우뚝 솟은 바위가 있어 남평문씨 시조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바위 위에는 후손들이 문암(文巖)이라는 비석을 세워 놓아 문씨 시조의 탄강지임을 말해 주고 있으며, 장자지는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 못가에 장연서원을 세워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음력 9월 중정일에 향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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