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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할아버지의 직업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T01008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집필자 문순덕

용담캠퍼스 시절

김홍식은 1954년에 대학교(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고향인 제주시에 왔다. 1954년 10월쯤에 신성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로 10개월 정도 근무하다가 1955년에 입대하게 되었다고 한다. 1957년 10월에 제대하고 제주대학교 시간강사를 하면서 다시 신성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몇 달 겸직했다고 한다. 1957년 제주대학에 시간강사로 1년 정도 근무하고 1958년에 전임강사 발령을 받았다. 제주대학이 1952년에 개교했는데 초창기에는 6·25전쟁이 발발할 때니까 교수와 학생들의 이동이 잦았다. 제주대학 개교 당시 국문과, 법과, 농과, 상과, 영문과가 있었다.

아라동캠퍼스

제주대학교 교사가 제주시 용담동에서 1979년에 현재 캠퍼스인 아라동으로 이전했으며 1981년에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었다(제주대학교 초대 총장은 현평효이며, 국어국문학과 국어학 교수였음). 김홍식은 직장생활(제주대학교 교수재식 시)을 할 때 한 20~30년 간 도시락을 싸 다녔다고 한다. 그 당시는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사람들이 많을 때였다. 제주대학교용담동에 있을 때는 강의시간에 따라서 집에 가서 점심을 먹기도 했지만 1980년에 아라동캠퍼스로 이사하면서 주로 도시락을 갖고 다녔다. 점심때가 되면 연구실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었다고 한다. 그 도시락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김홍식은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어학 분야를 강의했다. ‘제주방언 음운·문법·지명’ 등을 연구했으며, 1987년에 제주대학교 인문대학장(2년간)에 취임했다.

정년 준비와 노후의 삶

김홍식은 특별히 정년을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60세가 넘어가면 정년이 가까워지는구나 생각하고 자립적으로 생활하고, 공직생활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 정도였다고 한다. 다른 직업의 정년과 달라서 교육계는 정년 후에도 1~2년 정도 강의를 할 수 있으니까 정년퇴직하고 완전히 직장을 떠단다는 생각은 덜 하게 된다고 한다. 김홍식은 정년퇴직 후에도 명예교수로 약 5년 정도 1강좌씩 강의를 했다. 퇴직 후에 강좌가 있다는 것은 시수가 중요하지 않고 대학에 나갈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한다.

김홍식은 1995년 8월에 정년퇴직을 했다. 한 5년간 제주대학교 명예교수로 국어국문학과 강의(대학원에서 국어학 분야 강의함. 제주교육대학교에도 출강함)를 삼도2동 원로회에도 참여하고 있다. 낮에는 서재에서 젊은 시절에 보던 책을 보기도 하고, 무료할 때는 집 밖으로 나가서 집 주변을 거닌다고 했다. 퇴직 후에 손님접대상 가끔 외식을 했는데 한 1~2년(2005년 이후) 전부터 외식하는 횟수가 잦다고 한다. 외식할 때 음식은 그날 먹고 싶은 것으로 정하는데 한식집, 삼계탕 등이며 주로 아내가 먹자고 권한다고 한다. 식당을 정할 때는 먼저 교통편을 생각해서 걸어서 가거나 택시를 타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을 정한다.

김금심은 나이가 들어가니까 소식을 하게 된다고 한다. 하루 2~3끼니는 먹는데 매 끼니를 준비하는 것이 불편하면 가끔 중국음식을 불러서 먹기도 하고 외식을 하기도 한다. 김홍식은 외식하는 것도 좋지만 자주 하다 보면 습관이 되어서 집 음식을 먹지 않을 수도 있어서 그게 걱정이라고 했다.

"우리 집 양반은 옛날부터 외식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집에서 된장국에 밥 먹는 것을 제일 좋아해. 그리고 특별한 요리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토속적인 음식을 좋아하고. 그래서 반찬 만드는 부담은 안 느껴요. 그래도 가끔 끼니 준비를 하기 싫을 때는 나가서 먹고 오자고 해요. 젊을 때는 외식을 싫어하던데 나이 먹으니까 그게 조금 달라지데요. 내 심정을 이해해 줘서. 젊을 때는 나가자고 하면 “집에서 된장국에 밥 먹지, 왜 나가냐고” 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니까 내 고충을 알아주는 것 같아요."

김홍식의 자녀들은 주로 서울에 거주해서 처음에는 외로워도 체념하고 살았다. 우리 사회가 대부분 부모와 자식이 헤어져서 사는 경향이 많아서 받아들였다고 한다. 또한 김홍식 자신도 젊고 직장생활을 하니까 각자의 인생이라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자식들의 앞날을 생각해서 옆에 두지 말고 본인들이 원하는 직업과 거주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늙어가니까 생각이 변했다고 한다. 마음이 약해지고, 허전하고, 외로움도 느껴져서 자식을 곁에 두고 조석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서울에 살던 큰아들 가족이 제주도로 직장(제주대학교 회계학과 교수)을 옮기면서 옆에서 살게 되니까 마음이 든든하고 의지가 되어서 모든 부모의 마음이 이러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부모의 마음이란 참 묘하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자식들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생활하게 하고, 마음껏 활동하고 나래를 펴게 놔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곁에 자식을 두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이중적인 심리 상태가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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