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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280
한자 纛廟
영어공식명칭 Dukmyo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조선
집필자 유재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제단

[정의]

조선시대 삼척 영장이 주관하여 국가 제사를 지내던 제단.

[개설]

둑제(纛祭)는 조선시대 군대를 출동시킬 때 군령권(軍令權)을 상징하는 둑(纛)에 지내는 국가 제사로, 경칩[음력 2월]과 상강[음력 9월]에 병조판서가 주관하여 제사를 지낸다. 둑제는 국가의 군사권을 상징하는 제사로, 이에 관한 기록은 고려시대 때부터 나온다. 조선성종대에 편찬된 『국조오례의』에는 소사(小祀)로 규정되었다. 이 제사는 유일하게 무관들이 주관하여 지내는 국가 제사이다. 『국조오례의』 군례 서례에는 둑에 대하여 “치우(蚩尤)의 머리와 같다.”고 하였다. 즉 강력한 적을 정벌한 뒤 그 위엄을 과시하는 상징물이었다. 중국에서 둑이 제사의 대상이 된 것은 1001년(송 함평 4) 무렵이며, 명나라 때에 이르러 기둑묘(旗纛廟)의 신을 모시는 정기 제사를 둑제라 부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둑제는 고려시대에 도관(道觀)인 태청관(太淸觀)에 의하여 시행되었기 때문에 도교 성향이 짙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1393년(태조 2)에 홍둑(紅纛)과 흑둑(黑纛)을 만들고 처음으로 둑제를 지냈다. 둑제에 참여하는 사람은 모두 갑옷과 투구를 갖추었으며, 중앙의 둑소 및 지방의 병영·수영 등에서도 둑제를 지냈다. 둑제는 조선시대의 사전(祀典) 체제에서 보기 드문 군사 관련 제의였다. 이러한 특수성은 또 다른 군사 관련 제의인 마제(禡祭) 등이 조선 후기에 이르러 거의 시행되지 않게 되면서 더욱 강해졌다.

[삼척 둑제]

19세기에 발간된 『관동지』에 따르면 강원도에는 김화에 둑제소(纛祭所)가 있었다. 둑소(纛所)는 김화 관아 남쪽의 백수봉에 있었으며, 군사 훈련을 할 때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둑제에 대해 삼척은 영장(營將), 원주는 순중군(巡中軍)[감영의 중군], 강릉은 지방관이 각각 제사를 지낸다고 나온다. 삼척에는 둑묘(纛廟)가 성내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가운데 삼척 영장이 둑제를 여기서 지낸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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