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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2885
한자 西湖歌
영어의미역 Korean Verse of Seoho Lak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석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가사|양반가사
작가 이호민(李好閔, 1553~1634)
창작연도/발표연도 1599년(선조 32)연표보기

[정의]

1599년(선조 32) 구미 지역 출신의 이호민이 지은 가사.

[개설]

이호민(李好閔, 1553~1634)은 조선 선조(宣祖, 1552~1608) 때의 공신으로 자는 효언(孝彦), 호는 오봉(五峯)·남곽(南郭)·수와(睡窩)이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연릉부원군(延陵府院君)에 봉해졌다. 1599년(선조 32) 동지중추부사가 되어 임진왜란 때 군대를 내어 도와준 명나라에 고마움을 올리는 사은사로 명나라에 갔다. 같은 해 5월 사은사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여 서호에 머물러 살았는데, 「서호가」는 이때 느낀 정회를 111구의 가사로 읊은 작품이다. 이호민의 초고문집(草稿文集)인 『난후습유(亂後拾遺)』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이호민은 1599년(선조 32) 5월 사은사 임무를 마치고 귀국해서 서호(西湖, 지금 당인리발전소가 있는 주변)의 강 언덕에 있는 자택에 기거하였다. 군은(君恩)에 감사하고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 주위에 전개되는 자연에 심취한 기간이었는데, 이때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우국일념으로 분주했던 일들을 회고하고, 벼슬길에 나가는 것보다는 자연에 묻혀 살기를 희구하였다.

「서호가」의 첫 부분은 “기해(己亥) 윤사월(閏四月)의 용만(龍灣)의 봉사(奉仕)여/ 오월(五月)의 도라와 복명(復命)을 오리라/ 금곡(金谷)의 를 타 서호(西湖)의 드로오니/ 강산(江山)은 의구(依舊)고 풍색이 엇더뇨/ 군은(君恩)은 그지업서 삼순(三旬)을 놀니시니/ 장하강촌(長夏江村)의 와실(蝸室)이 소조(蕭條)야/ 시문(柴門)이 본 업서 밤인 다소냐/ 발이 하 성긔니 물보기 더욱 됴타.”이고, 마지막 부분은 “이 태화(太和)로다 강풍(江風) 쾌히 부러/ 격양가(擊壤歌) 소예 만물(萬物)이 다 편며/ 경성(卿星)도 도며 경운(卿雲)도 넘놀 제/ 이 몸이 서호(西湖)의 물너셔도/ 소매 길게 여 조수동무(鳥獸同舞) 노리라.”이다.

[의의와 평가]

「서호가」이호민의 심정과 정서를 간결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국문학사적으로 볼 때 16세기에 지어진 가사가 희귀하고, 또 민족의 큰 비극이었던 임진왜란과 관계된 가사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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