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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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년(순조 18) 이만운이 구미 지역의 천생산성 일대를 유람하고 쓴 기행문. 이만운(李萬運, 1736~?)은 조선 정조(正祖, 1752~1800) 때의 학자로 자는 원춘(元春), 호는 묵헌(默軒)이다. 박학하여 천문·역산(曆算)·지리·명물(名物) 등에 능하였다. 「유천생산기」는 이만운이 박여(朴汝)·엄익치(嚴益稚)와 더불어 정월 보름날 신동·황상동·금전동·장천면에 걸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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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열녀. 본관은 진성(眞城). 아버지는 퇴계 이황의 7세손 이세룡(李世龍)이며, 남편은 김예선(金禮宣)이다. 김예선의 처 진성이씨는 18살 때 출가하여 시부모를 정성으로 봉양하였으며, 시부가 병환이 나자 정성을 다하여 하늘에 쾌유를 빌었다. 남편이 죽자 오히려 시부모를 위로하고 아들을 잘 키웠으며, 3년 상이 끝나던 날 아들을 시숙에게 맡기며 남편의 뒤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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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호는 백암(白巖). 아버지는 김원로(金元老)이며, 동생은 농암(籠巖) 김주(金澍)이다. 김제(金濟)는 고려 공양왕 때 조봉랑(朝奉郎)으로 평해군수에 재직하다가 망국의 소식을 듣고 깊이 통곡하였으며, 중국 제나라 때 나라를 위하여 바다에 빠져 죽은 노중련(魯仲連)의 고사를 본받아 이름을 제해(濟海)로 고쳤다. 이후 시 한 수를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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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호는 농암(籠巖). 아버지는 김원로(金元老)이며, 형은 백암(白巖) 김제(金濟)이다. 김주(金澍)는 1392년(공양왕 4)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내며 하절사(賀節使)로 명나라에 갔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압록강에 이르러 망국의 소식을 듣고 명나라로 다시 돌아가 명나라 황제에게 조선을 정벌하고 고려를 다시 건국해줄 것을 주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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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주로 부녀자들이 즐기는 놀이. 널뛰기는 정초에 여자들이 둘로 나뉘어, 긴 널빤지의 중간에 둥근 짚단을 받치고, 양쪽에서 서로 균형을 잡아가며 발로 굴러서 서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반복하는 민속놀이이다. 널뛰기는 도판희(跳板戱) 또는 판무(板舞)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부터 여자들의 놀이로 전해온 풍속이라고 한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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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에 있는 조선 후기 누각. 조선 정조(正祖) 때의 학자 동암(東巖) 유장원(柳長源)이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하여 세웠다. 원래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었는데 1987년 임하댐 수몰지역에 편입되어 현재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크기의 팔작지붕집이다. 평면 구성을 보면 왼편에 2칸 크기의 온돌방을 두고 오른편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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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字)는 여건(汝健).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박춘보(朴春普)이다. 박천행은 1774년(영조 50) 45세의 만학으로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의 문학·사서·필선, 사헌부의 지평·장령·집의, 홍문관의 부수찬·수찬·부교리·교리·부응교·응교, 승정원의 동부승지·좌부승지, 사간원의 대사간을 역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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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사혁(士赫), 호는 해강(海岡).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 박춘보(朴春普)이다. 박천형은 1773년(영조 49) 37세로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 호남어사, 제주어사, 접위관, 사간원정언, 세자시강원문학·필선·보덕, 사헌부장령·집의, 홍문관수찬·부교리·교리·부응교·응교, 황해도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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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백상(伯常), 호는 방간(方間). 아버지는 윤득민(尹得敏)이다. 윤동은 1754년(영조 30) 문과에 급제하여 다음해 설서(說書)를 거쳐 정언,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제주목사를 거쳐 좌부승지, 대사헌 등을 역임했다. 그 후 정조 때에 경기도관찰사, 개성부유수,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탕평책(蕩平策)에 순응하지 않고 당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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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군정을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구미시 세거 성씨. 시조 윤군정(尹君正)은 고려 고종과 원종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서 수사공(守司空)·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공부판사(工部判事)를 지냈다. 손자 윤석(尹碩)은 고려 충숙왕 때 충근절의동덕찬화보정공신·벽상삼중대광으로서 도첨의사·우의정·판전리사사를 지냈으며 해평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해평을 본관으로 하였다. 윤군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