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노경건의 처 송씨의 정려비. 송씨는 사인(士人) 노경건의 처로 임진왜란을 당하여 1593년(선조 26) 5월 상주(尙州)의 산중으로 부부가 함께 피난하던 도중 적을 만났는데 적이 남편을 해치려 하자 송씨(宋氏)는 전력을 다하여 대항하였다. 적이 남편을 살해하고 다시 송씨를 겁탈하려고 하자 송씨는 자신의 목을 베더라도 그들의 뜻을 따를...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열녀. 본관은 여산(礪山). 아버지는 우곡(愚谷) 송량(宋亮)이다. 노경건(盧景鍵)의 처 여산송씨(宋氏)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편과 함께 상주(尙州)의 산속으로 피신하였다. 1593년(선조 26) 5월 왜군에게 발각되어 남편이 위험해지자 전력을 다해 대항하였고, 왜군이 남편을 살해한 뒤 겁탈하려고 하자 혼신의 힘을 다해 저항하다가 피살되었다. 이후 열행(烈...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던 시기 구미 지역의 역사. 구미시의 ‘구미’ 명칭은 조선시대 선산도호부 상구미면(上龜尾面)·하구미면(下龜尾面)에서 비롯되어 1914년 상하구면·하구미면이 개칭된 상고면·하고면이 구미면으로 통합, 개칭된 데 기인한다. 독립된 행정구역으로서의 구미시는 1978년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통합되어 시로 승격하면서 성립하였고, 1995...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모여 사는 촌락.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강조하면서 숭유억불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였다. 그러나 고려왕조의 불교적 색채는 조선 전기까지 끈질기게 남아 있었으며, 조선왕조가 추진하는 성리학적 지배이데올로기는 중종 연간을 지나면서 서서히 지방 양반과 일반 백성에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남귀여가(男歸女家)의 혼인, 재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