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은 원래 동네 이름이 아니었다. 지금의 남산 동네 뒤에 있는 산이 관아(官衙)에서 보아 남쪽에 있는 산이라 해서 남산이라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그 산 아래에 있는 마을을 남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19세인 열을 판서공, 희를 승지공이라 부르는데 이 판서공과 승지공의 후손이 주로 새올(신곡)을 본거지로 삼고 있다. 판서공의 후손은 주로 안마와 거리마에 거주하였고, 승지공의...
승지공[휘 熙]은 중종 8년(1513) 서울 남문 밖에서 나서 20세경에 부친[휘 繼曾]을 따라 성주로 귀향하였다. 부친은 다시 형 열(烈)을 데리고 인동으로 환향하였으므로 암포에 남아 옛집을 지키게 되었다. 여기서 아들 현도(顯道)가 나고 손자 5형제가 났다. 승지공은 경사(經史)를 두루 익히고 박학다식하여 널리 회자되었다. 자가 언여(彦汝)이고, 호는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