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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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에 있는 강학을 위한 조선 전기 건물. 대월재는 조선 전기의 명신이며 청백리였던 구암(久庵) 김취문(金就文, 1509~1570)이 강학 공간으로 마련한 건물이다. 김취문은 선산 평성(들성) 출신으로 송당 박영(朴英)의 문인이다. 1537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종2품에 올랐으며, 명종 때는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또한 야은 길재, 강호 김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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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문성리의 인노천 위에 있는 다리. 들에 성이 있다고 하여 들성 또는 문성이라고 불리는 문성리에 있다는 의미에서 문성교라고 이름 붙었다. 길이는 25m, 폭은 18m, 높이는 3m이다. 경간(徑間, 지주 교각) 수는 2개이다. 상행과 하행 각기 2차선 차도와 보도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 구조 형식은 강화 콘크리트 슬라브교(RCS)이고, 하부 구조 형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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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초기부터 아홉 개의 독립된 자연마을이 있었는데 그중 한 마을이 이름 높은 선비들이 많이 나와서 문성동리(文星洞里)라고 하였다. 이를 자랑으로 여겨 1914년 마을을 통합하면서 마을 이름을 문성리로 통일하였다고 한다. 아홉 개 자연마을의 지명 유래는 다음과 같다. 문성(일명 들성, 평성)은 개미산이 들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성을 이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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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를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구미 지역의 세거 성씨. 선산은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一善郡)이라 칭하였고, 614년(진평왕 36) 주(州)로 승격되었지만 687년(신문왕 7)에 폐지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숭선군(崇善郡)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995년(성종 14)에 다시 선주(善州)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상주의 속주가 되었다. 1143년(인종 21)에 일선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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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씨는 올해 80세로 현재 원호1리에 살고 있다. 택호가 상주댁이다. 남편 고향이 상주인데 처갓집에 살게 되면서 남편의 고향을 따서 상주댁으로 불리게 되었다. 원호리 원당골에서 5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가 면서기로 계시면서 집안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 친정엄마가 농사를 지었다. 마을에서 논농사는 여자가 짓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일을 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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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문성리에 위치한 연못. 고아읍 문성리 마을 앞에는 늪이 있었는데 조선 초기의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자고 일어나 보니 누군가가 그 늪 둘레를 짚으로 나란히 이어놓았다. 주민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간밤에 앞산에서 여우가 몹시 울었던 사실을 기억하며, 이는 반드시 여우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짚이 놓였던 자리대로 둑을 쌓으라는 뜻인 줄 알고 그대로 둑을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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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안에 둥근 못이 있어 원호(元湖)라고 하였다. 들판이 산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마치 성(城)과 같다 하여 들성, 야성(野城)으로도 불리었다. 자연마을로 웃골[上谷], 점터[店峴], 중동(中洞), 원당골[元堂谷] 등이 있다. 웃골은 거정동(居正洞)과 석천동(石泉洞)이 합하여 된 마을로, 거정동은 여러 어진 사람들이 많이 나서 살았다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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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문화재 기념물 제132호이며 원호2리 웃골 도로변에 접해있다. 선산김씨 24세인 충신 김종무(金宗武)의 충절을 기린 정려각이다. 김종무는 문간공(文簡公) 구암(久庵) 김취문(金就文)의 장자로 1548년(명종3년)에 선산(들성)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손자 약암공(藥庵公) 유(濡)의 상소로 1675년(숙종 원년)에 정표가 내려 사림에서 건립되어 수차 중수하여 현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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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모여 사는 촌락.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강조하면서 숭유억불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였다. 그러나 고려왕조의 불교적 색채는 조선 전기까지 끈질기게 남아 있었으며, 조선왕조가 추진하는 성리학적 지배이데올로기는 중종 연간을 지나면서 서서히 지방 양반과 일반 백성에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남귀여가(男歸女家)의 혼인, 재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