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전후까지만 하더라도 낙동강에는 소금배가 많이 다녔다. 소금배는 소금만 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요즘의 잡화상처럼 참빗이나 ‘구루무(크림, 화장품)’등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해평면 소재지의 잡화점을 이용하기보다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오르내리는 소금배를 더 많이 이용하였다. 당시는 주로 현물로 물물교환을 주로 하였는데, 동네 여성들은 소...
동제인 주산제사와는 달리 뒷개들 들머리 쪽의 해평김씨 재실이 있는 시중사(侍中祠)에 모신 석상에 대한 서낭제사가 있었다. 예전에 주민들은 석상을 모셔둔 이곳을 서낭당이라고 하여 특히 애 못 낳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정성을 드렸다. 이 석상을 서낭당으로 하여 모신 유래는 여전히 주민들 사이에 생생하게 전해져 오고 있다. 해평큰마와 해평들을 마주보고 있는 오상동(五相洞, 오늘...
오늘날 해평 마을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형적인 농촌이고, 넓은 들판이 사방에 널려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과거 마을규모는 170호가 넘는 대촌이었으나 2007년 현재는 전업농이 50여 명 내외에 불과하다. 젊은 인구도 적고, 이곳에 살지만 사람들의 실질적인 삶은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웬만한 젊은이들은 모두 구미 쪽 도시로 출퇴근하거나 아예 도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