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075
한자 金宗直
영어음역 Gim Jongjik
이칭/별칭 계온,점필재,문충(文忠)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남도 밀양시
성별
생년 1431년연표보기
몰년 1492년연표보기
본관 일선
대표관직 이조좌랑|형조판서|지중추부사

[정의]

선산부사를 지낸 조선 전기의 문신.

[개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정몽주(鄭夢周, 1337~1392)길재(吉再, 1353~1419)김숙자(金叔滋, 1389~1456)로 이어지는 한국 유학의 정통을 계승한 영남 사림파의 종장(宗匠)이다. 생전에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이 사후에 문제가 되어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 부관참시(剖棺斬屍: 무덤에서 관을 꺼내어 시신을 참수하는 극형)를 당하였다.

[가계]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계온(季溫), 호는 점필재(佔畢齋). 아버지는 강호(江湖) 김숙자(金叔滋)이다.

[활동사항]

김종직은 아버지 김숙자에게서 수학하였으며, 1453년(단종 1) 진사가 되고 1459년(세조 5) 식년문과에 정과 20등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사가독서(賜暇讀書: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한 제도)하고 1462년 승문원박사로 예문관봉교를 겸하였다.

성종이 즉위하자 경연관이 되었으며, 이후 경상도병마평사·이조좌랑·함양군수·선산부사·우부승지·좌부승지·이조참판·예문관제학·병조참판·홍문관제학·공조참판·형조판서·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489년(성종 20) 병으로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내려갔으며, 1492년 8월 19일 62세로 별세하였다.

1498년(연산군 4) 생전에 단종의 폐위를 슬퍼하고 세조의 불의를 풍자했던 「조의제문」을 제자인 김일손(金馹孫)이 사관으로서 사초에 적어 넣은 것이 원인이 되어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이로 인하여 부관참시를 당하고 문집이 모두 소각되었으며, 김일손을 비롯한 많은 제자들이 죽음을 당하였다.

[학문과 사상]

정몽주길재김숙자로 이어지는 한국 유학의 정통을 계승하여 학문과 덕행이 만인의 사표가 되었다. 문하에서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유호인(兪好仁)·조위(曺偉)·남효온(南孝溫)·홍유손(洪裕孫) 등의 도학자들이 배출되었으며, 이후 조광조(趙光祖)에게까지 그 학통이 계승되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점필재집(佔畢齋集)』, 『유두류록(遊頭流錄)』, 『청구풍아(靑丘風雅)』, 『당후일기(堂後日記)』 등이 있으며, 편저로는 『대동문수(大東文粹)』, 『일선지(一善誌)』, 『이준록(彛尊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이 전해지고 있으나, 많은 저술들이 무오사화 때 소실된 관계로 그렇게 많지 않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구미의 금오서원(金烏書院), 함양의 백연서원(栢淵書院), 밀양의 예림서원(禮林書院), 금산의 경렴서원(景濂書院), 고창의 운곡서원(雲谷書院), 개령의 덕림서원(德林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