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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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湖里 |
영어공식명칭 | Deoko-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덕호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병삼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덕호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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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호리 -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덕호리 | |
성격 | 법정리 |
면적 | 8.3㎢ |
가구수 | 192가구 |
인구[남/여] | 364명[남자 192명|여자 172명]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덕호리(德湖里)는 텃골 북쪽 갯가에 있어 ‘텃골개’, ‘텃굴개’라 하였다. 옆 마을 부흥마을을 내덕(內德), 덕호마을을 외덕(外德)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산이면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이면의 백동리, 학림리, 백천리, 옹암리와, 반송리·덕호리·부흥리·해당리·방축리·예정리 각 일부를 합하여 해남군 산이면 덕호리로 개설되었다. 덕호리는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산이면에 속한 마을로 나온다. 현재 덕호마을, 부흥마을, 학림마을, 백동마을, 해월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다.
부흥마을은 1400년 말 원주이씨가 입향하였다고 전한다. 큰마을, 새주막, 웃골, 작은마을 등 4개의 동네로 이루어졌다. 덕호마을은 1600년 말 창녕조씨 조정후(曺廷候)가 강진에서 입향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해월마을은 일제강점기에 해원원장이라는 간척지가 생기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문내, 무안 등 여러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백동마을에 속하였으나 주민이 늘어나자 1950년대 말에 분리하였다. 해월마을에는 물이 맑고 맛이 뛰어난 ‘용담샘’이 있었다. 만조 시에 바닷물과 합쳐졌다가 간조 시에 샘의 모습이 드러났으나 맑은 물이 철철 넘쳤다고 한다. 바다를 간척하면서 용담샘도 사라졌다. 용담샘에 대한 이야기는 라디오 방송 ‘전설 따라 삼천리’에도 나왔다. 학림마을은 1800년 말 전주이씨 이봉국(李奉局)과 천안전씨 전낙중(全洛仲)이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한다. 백동마을은 1600년 말 광산김씨 김장수(金長壽)가 입향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한다.
[자연환경]
덕호리는 높은 산이 없어서 마을이 구릉지 위에 들어섰다. 예전에 마을의 동서쪽으로 바닷물이 들어왔으나 금호방조제·영암방조제 건설 사업으로 간척농경지가 넓게 조성되면서 갯벌이 사라졌다. 마을 서남쪽으로 오호제에서 흘러나온 금자천이 금호호로 흘러 들어간다.
[현황]
덕호리(德湖里)는 북쪽으로 송천리, 동쪽으로 금송리, 남쪽으로 예정리, 서쪽으로 예정리와 접하고 있다. 북동쪽으로 영암호를 사이에 두고 마산면 연구리와 마주보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8.3㎢이며, 덕호리, 부흥리, 학림리, 백동리, 해월리의 5개 행정리에 192가구, 364명[남자 192명, 여자 17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대부분 주민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주 소득원은 쌀이다. 특작물은 배추, 감자, 고구마, 고추를 생산한다. 해월마을에서는 인삼을 재배하는데, 생산된 인삼은 인삼가공공장으로 나간다. 학림마을에서는 봄 감자, 백동마을에서는 겨울 감자를 심고 있다. 농업용수는 부흥제, 백동제, 대명제, 해월저수지, 학림제, 영암호 물을 이용하고 있다. 덕호리 중앙으로 지방도 제806호선이 지나간다.
학림마을에 옹기가마터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마을회관에서 조금 떨어진 구릉 경사면의 대밭 주변에 있고, 다른 하나는 마을 안에 있다. 마을에 질 좋은 점토와 나무가 많아서 1960년대 중반까지 옹기를 구워 마을 앞 뱃머리 포구에서 배로 실어 나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