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3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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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竹山縣 |
영어공식명칭 | Juksan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마산면|계곡면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한정훈 |
관할 지역 | 죽산현 -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마산면|계곡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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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마산면·계곡면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개설]
고려시대 영암군의 속현인 죽산현(竹山縣)은 오늘날 해남군 산이면·마산면·계곡면 일대에 분포하였다. 죽산현 영내의 문화유산으로 죽산현고성, 금강산성, 장촌리 삼층석탑, 은적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 등이 확인된다. 죽산현 치소 일대에는 은적사가 있는 장촌리 뒷산인 금강산에 죽산현을 보위하는 산성인 금강산성이 위치하였다. 죽산성으로도 불리는 금강산성[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27호]은 금강산의 계곡을 가로질러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고려시대 나주목 관내를 아우르는 육상교통망인 승나주도(昇羅州道) 소속의 별진역(別珍驛)이 죽산현에 위치하였는데, 영보역[영암]~별진역[죽산]~남리역[황원]으로 이어지는 역로상에 위치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죽산현은 양무군(陽武郡)에 소속된 작은 고을이었다. 고려 초에 양무군이 영암군에 영속되자 죽산현도 영암 임내의 속현으로 편입되었다.
[관련 기록]
“죽산현은 본래 백제의 고서이현(古西伊縣)으로, 신라 경덕왕 때 이름을 고안(固安)으로 고치고, 양무군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에 와서 지금 이름으로 바꾸고, 영암군에 내속(來屬)하였다.”[『고려사(高麗史)』 권57, 지리2 전라도 죽산현]
“죽산(竹山) 폐현은 해남현의 북쪽 10리[약 3.93㎞]에 있다. 본래 백제의 고서이현이었는데, 신라 때에 고안현(固安縣)으로 고쳐 양무군에 딸린 현이 되었으며, 동안(同安)이라고도 썼다. 고려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영암군에 예속되었다가 본조에 이르러 본현에 내속되었다. 그곳에 옛 돌성이 있는데 둘레가 2640자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7, 해남현 고적]
[내용]
고려시대 해남 지역에 위치한 고을 중 하나로, 오늘날의 산이면·마산면·계곡면 일대에 분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죽산현은 백제 때에 고서이현, 통일신라 때에는 고안현 또는 동안현(同安縣)으로 인근의 고(古)해남현과 함께 지금의 강진군에 해당하는 양무군에 소속된 작은 고을이었다. 하지만 고려 초에 양무군이 영암군에 영속되자 죽산현도 영암의 임내로 편입되었다.
고려시대의 죽산현 치소(治所)는 마산면 장촌리로 비정되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해남현 고적 조에 “(해남)현의 북쪽 10리에 있는 죽산폐현에 둘레가 2,640척인 옛 돌성이 있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대동지지(大東地志)』 성지(城池)조에는 둘레가 2,640척인 죽산고현성과 별개인 금강산고성(金剛山古城)의 성터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변천]
죽산현은 백제 때 고서이현, 통일신라 때 고안현 또는 동안현으로, 지금의 강진군에 해당하는 양무군(陽武郡)에 소속된 작은 고을이었지만 고려 초에 양무군이 영암군에 영속되자 죽산현도 영암 임내의 속현으로 편입되었다.
[의의와 평가]
2009년에 태안 해역에서 출수된 마도1호선의 50여점의 목간 중에 죽산현(竹山縣)이 발신처로 표기된 목간 5점이 확인되어 향후 고려시대 해남 일대의 산업과 해운활동 양상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