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양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365
한자 松陽縣
영어공식명칭 Songyangh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한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할 지역 송양현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지도보기

[정의]

고려 초기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개설]

고려 초기 짧은 시기 동안 낭주(朗州)[지금의 영암]의 속현으로서 송지면에 위치하였다. 이후 여러 개의 향, 부곡 형태로 전락하여 존속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시대 낭주의 속현으로 존속하던 송양현(松陽縣)은 고려 말~조선 초기에 송지부곡 등의 향소부곡 특수 행정구역으로 전락하였다.

[관련 기록]

“향(鄕)이 2이니 진남(鎭南)·북평(北平)이요, 소(所)가 4이니 동백(冬栢)·마봉(馬峯)·신갈(神葛)·귀인(貴仁)이요, 부곡(部曲)이 4이니 팔마(八馬)·회의(懷義)·송지(松旨)·심정(深井)이다.”[『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나주목 영암군]

달마산(達摩山)은 옛날 송양현에 있는데, 군의 남쪽으로 124리[약 48.70㎞] 떨어져 있다. 또 해남현(海南縣)에서도 보인다. 고려 때 중 무외(無畏)의 기(記)에, ‘전라도 낭주의 속현을 송양현이라 하는데, 실로 천하에서 궁벽한 곳이다. 그리고 그 현의 경계에 달마산이 있는데…… (후략).’”[『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5, 영암군 산천]

“북평향(北平鄕)과 송지부곡(松旨部曲)은 모두 현의 남쪽 60리[약 23.56㎞] 에 있다. …… 마봉소(馬峯所) 현의 남쪽 60리에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37, 해남군 고적]

[내용]

『신증동국여지승람』 영암군 산천 달마산에 전하는 고려시대 때 승려 무외(無畏)의 기문에 ‘낭주의 속현’이라 한 것을 보면, 고려 초 낭주의 속현인 고을 명칭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 뒤의 연혁이나 기록은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현의 경계에 달마산이 있다는 것으로 보아 송양현송지면 일대이거나 이 지역과 무관하지 않는 지역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구전에 의하면 송양현 터는 지금의 현산면 송촌·월송·향교리로 전해 온다.

오늘날의 송지면·북평면 등 해남의 남쪽 지역은 현재 남아 있는 문헌기록상으로 백제에서 통일신라 시기 해남 지역에 위치한 황원현·해남현·죽산현의 세 현(縣)에 편제되지 않은 채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향(鄕)이나 부곡(部曲)의 형태로 존재하였을 것으로 이해된다. 백제 멸망 시에 신라에 저항하는 항쟁이 컸기 때문에 이 일대가 통일신라 시기에 향·부곡으로 격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통일신라의 이러한 전통이 고려시대에까지 이어졌고, 왕건의 고려 건국에 밀접히 연결되어 있던 영암군이 인근의 행정 중심지로 부각되면서 이 일대에 있던 향·부곡 지역은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 영암군에서 전하는 향소부곡 현황에서 송지면 일대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 북평향, 마봉소, 송지부곡·심정부곡 정도이다. 마봉소는 지금의 송지면 마봉 지역, 송지부곡은 송지 지역 그리고 심정부곡은 지금의 송지면 소죽리와 대죽리 사이에 각각 해당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해남현 고적에 따르면, 북평향과 송지부곡 그리고 마봉소 모두 해남현 남 60리, 『신증동국여지승람』 영암군 고적에 심정부곡이 군의 130리[약 51.05㎞]에 있다고 한다. 이들 기록을 종합해 보면, 송지면북평면 일대는 고려 초기 낭주의 속현인 송양현으로 존재하다가 언제부터인가 영암군의 월경지인 소(所)와 부곡(部曲)으로 존속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변천]

고려시대 송양현은 고려 말, 조선 초에 북평향, 마봉소, 송지부곡, 심정부곡 등의 특수 행정구역으로 나뉘었다.

[의의와 평가]

송양현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전라도의 도서 및 연해 지역 월경지(越境地)[특정 행정구역에 속하면서 본토와는 떨어져, 주위를 다른·행정구역 등에 둘러싸여 격리된 곳] 연구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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