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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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壬辰倭亂 |
영어공식명칭 |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윤섭 |
[정의]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에 침입한 왜군과의 전쟁.
[역사적 배경]
임진왜란(壬辰倭亂)은 2차례에 걸쳐 일어나는데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한다.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 5월 23일부터 1598년(선조 31) 12월 16일까지 7년간 조선과 명나라, 일본 사이에서 일어난 국제 전쟁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16세기~17세기 동아시아의 역사를 뒤흔든 전면전이었다. 문치의 극성기인 16세기 말 국방과 군역의 제도가 허물어져 국방이 취약한 상황에서 일본은 백여 년간에 걸친 혼란한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방세력가인 다이묘들의 눈을 외부로 돌리고 힘을 분출시키기 위해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명가도를 내세워 1592년 4월 20만 명의 대군을 아홉 부대로 나누어 조선을 침략하였다.
[임진왜란의 경과]
임진왜란 초반 왜군은 20만 명의 대병력과 우세한 무기를 앞세워 평양과 함경도까지 유린하지만 이순신을 중심으로 한 해전에서는 연전연승하며 큰 전과를 올린다. 이를 통해 해상권을 장악하여 왜군이 북진하는 육군과 합세하려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또한 각 지역에서 일어난 의병들과 명나라의 이여송이 5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참전함에 따라 전세는 조명 연합군에 유리하게 전개되어 왜군은 휴전을 제의한다. 이에 따라 임진왜란은 잠시 멈추지만 일본은 화의가 결렬되자 1597년 다시 침략하는 정유재란이 일어난다.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받았지만 원균과의 갈등, 왜군의 계략으로 파직되어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의 직을 갖게 되고 이순신은 백의종군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왜군은 제해권을 장악하려고 맹렬한 공세를 취하였다. 원균은 부산 쪽으로 진격하다 칠전도와 고성 앞바다에서 대패하였고, 원균은 전사하고 만다. 그러나 육지에서는 조명연합군이 다시 직산에서 왜군의 북진을 차단하고 남쪽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복귀하여 13척의 함선을 이끌고 울돌목에서 서해로 향하는 적선 133척을 물리치는 명량해전이 시작된다.
[임진왜란의 결과]
명량해전에서 큰 승전을 거두었다. 해남과 진도 사이의 해협인 울돌목에서 벌어졌던 명량해전은 임진왜란의 승패를 가른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는 해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명량해전으로 인해 왜군은 더이상 서해를 통해 북진할 수 없었으며, 육지와 바다에서 패한 왜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도요토미가 죽자 철수를 한다. 1598년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본국으로 도망가는 왜군을 가로막고 최후의 일격을 가하다 적탄에 최후를 맞이한다.
[의의와 평가]
왜군이 철수함으로써 7년간에 걸친 임진왜란은 조선의 승리로 끝이 난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조선은 전 국토가 유린당하는 등 큰 피해를 보며, 명나라 또한 전쟁의 여파로 인해 급속히 세력을 키운 여진족에게 결국 나중에는 멸망당하는 등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질서를 바꾼 국제전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