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5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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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原白氏 |
영어공식명칭 | Suwon Baek Clan |
이칭/별칭 | 해미백씨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윤섭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537년 - 백광훈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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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582년 - 백광훈 사망 |
입향 시기/일시 | 1560년 - 백광훈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송산리로 입향 |
본관 | 수원 - 경기도 수원시 |
입향지 | 전라도 영암군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송산리 |
성씨 시조 | 백우경(白宇經) |
입향 시조 | 백광훈(白光勳) |
[정의]
백우경을 시조로 하고 백광훈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세거 성씨.
[개설]
수원 백씨(水原白氏)는 해남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주로 해남군 옥천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연원]
수원백씨의 시조 백우경(白宇經)은 중국 소주(蘇州) 출신으로, 당(唐)나라에서 첨의사(僉議事)와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냈으나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780년(선덕왕 1) 신라에 귀화하였다. 이후 세계는 실전되어 알 수 없으며, 신라 경덕왕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내고 상장군(上將軍)에 증직된 백창직(白昌稷)을 중시조로 삼았다.
백창직의 후손 백휘(白揮)가 고려 목종 때 수원군(水原君)에 봉해졌으며, 백천장(白天藏)이 원(元)나라에서 우승상(右丞相)을 지내고 귀국하여 고려 충선왕 때 수성백(隋城伯)[수성은 수원의 옛 이름이다]에 봉해졌다고 하나 둘 다 역사 기록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현재 전하는 역사 기록으로 볼 때 수원을 본관으로 처음 쓴 사람은 백효삼(白效參)이다. 백효삼은 1427년(세종 9) 과거시험 답안지에 본관을 수원으로 기재하였다. 백효삼은 보성현감(甫城縣監)을 지낸 백회(白薈)의 아들이다.
[입향 경위]
수원백씨 해남 입향조는 옥봉(玉峰) 백광훈(白光勳)[1537~1582]으로, 1560년(명종 15)에 해남군 옥천면 송산리 원경산(元敬山) 옥봉 아래에 만취당(晩翠堂)과 옥산서실(玉山書室)을 짓고 은거한 이후 후손들이 대를 이어 왔다. 수원백씨는 당시 선산임씨, 하동정씨 등 해남의 여러 재지사족(在地士族)들과 혼인 관계를 맺으며 지역의 유력 가문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백광훈은 최경창(崔慶昌)·이달(李達)과 더불어 삼당시인(三唐詩人)의 한 사람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졌다. 백광훈의 형인 백광안(白光顔)과 백광홍(白光弘), 그리고 사촌 아우 백광성(白光城) 또한 문장으로 칭송을 받았다.
[현황]
해남의 수원백씨는 옥천면 일대를 비롯해 송산리에 10여 가구가 살고 있다.
[관련 유적]
해남 수원백씨 관련 유적으로는 옥천면 송산리의 옥산서실(玉山書室)을 들 수 있다. 1712년(숙종 38) 옥봉사(玉峰祠)로 창건된 옥산서실은 백광훈을 배향하고 있으며, 백광훈과 아들인 백진남(白振南)의 후손들과 관련된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