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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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同福吳氏 |
영어공식명칭 | Dongbok Oh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사정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윤섭 |
입향 시기/일시 | 1498년 - 오빈 해남으로 유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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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216년 - 동복오씨 시조 오녕 동복군에 봉해짐 |
본관 | 동복 - 전라남도 화순군 |
입향지 |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사정리 |
세거|집성지 |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사정리 |
성씨 시조 | 오녕(吳寧) |
입향 시조 | 오빈(吳彬) |
[정의]
오녕을 시조로 하고 오빈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세거 성씨.
[개설]
동복오씨(同福吳氏)는 오빈(吳彬)을 입향조로 하는 해남 지역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계곡면과 산이면에 주로 기반을 두고 있다.
[연원]
오씨는 본래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로, 1962년 편찬된 『오씨대동보』는 모든 오씨의 시조는 신라 지증왕 때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온 오첨(吳瞻)이라고 적고 있다. 오첨은 다시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이후 후손인 오정총이 1076년(문종 30) 고려에 정착하면서 오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동복오씨는 오첨의 24세손 오현좌(吳賢佐)의 아들인 오녕(吳寧)을 시조로 삼고 있다. 『동복오씨대동보(同福吳氏大同譜)』에 따르면 오녕은 함께 거란의 침략을 물리친 공이 인정되어 동복군(同福君)에 봉해지고 현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후세에 본관을 동복으로 삼아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입향 경위]
동복오씨는 조선 초에 해남에 정착하였다. 1498년(연산군 4) 오빈이 해남군 계곡면에 유배를 왔다가 이후 유배에서 풀려난 뒤에 다시 해남으로 돌아와 정착하였다. 오빈은 1493년(성종 24)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고 오간, 오순, 오함 등 아들 셋도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였다.
동복오씨는 1280년(충렬왕 6) 오광찰(吳光札), 오광명(吳光明) 대에 이르러 2개 파로 나뉜다. 오광찰은 승지를 지냈다 하여 승지공파(承旨公派), 오광명은 무과 재신을 지냈다 하여 재신공파(宰臣公派)로 불린다. 해남에 거주하는 동복오씨는 대부분 승지공파이다.
계곡면 용지사(龍池詞)에 배향된 오극신(吳克信)·오홍적(吳弘績)·오달운(吳達運)을 해남 동복오씨의 대표적 인물로 들 수 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 무인으로 이름을 떨친 오극신은 아들 오계적(吳啓績), 조카 오홍적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이순신 휘하에서 여러 전투에 참가하여 적선 70여 척을 격파하는 등 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 아들 오계적과 함께 전사하자 나라에서는 오극신에게 병조참의를 내리고 선무원종훈에 기록하였다. 오극신 부자를 기리는 석상이 우수영 명량대첩기념공원에 세워져 있다.
오달운은 한 해에 다섯 번이나 장원을 할 정도로 학문이 높았으며, 국가의 폐단을 개혁하고 백성들을 고루 잘살게 하는 구민책을 제시하는 등 선각자적인 면모를 지닌 선비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현황]
해남의 동복오씨는 계곡면 사정리, 산이면 상공리, 북평면 오산리 등에 주로 살고 있다.
[관련 유적]
해남 동복오씨 관련 유적으로는 계곡면 용지사가 있다. 오극신, 오홍적, 오달운을 모신 용지사에서는 매년 음력 8월에 해남향교와 유도회가 주관해서 향사를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