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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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桂鄰 |
영어공식명칭 | Yu Gyerin |
이칭/별칭 | 성은(城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윤섭 |
[정의]
조선 전기 해남에서 활동한 학자.
[개설]
유계린(柳桂鄰)[1478~1528]은 해남에 은거하면서 학문 연마와 자녀 교육에 힘써 선산유씨(善山柳氏) 가문이 사림(士林)의 명문으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가계]
유계린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호는 성은(城隱)이다. 할아버지는 유양수(柳陽秀), 아버지는 유공준(柳公濬)이다. 동생은 유계근(柳桂近)이며, 호남삼걸(湖南三傑) 중 한 명인 유성춘(柳成春)과 유희춘(柳希春)이 아들이다. 부인은 금남(錦南) 최부(崔溥)의 딸 탐진최씨(耽津崔氏)이다.
[활동 사항]
유계린은 스승인 김굉필(金宏弼)[1454~1504]과 장인인 최부에게 학문을 배웠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史禍)와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김굉필과 최부가 희생되고 사림이 큰 피해를 입자 해남에 은거해 두문불출하며 후학을 가르치는 데에만 힘을 썼다.
유계린은 김굉필과 최부로부터 익힌 학문을 아들 유성춘, 유희춘에게 가르치며 성리학에 기반한 절제된 생활을 실천하며 살았다.
아들 유성춘은 스무 살에 과거에 급제한 뒤 이조정랑이 되어 조광조(趙光祖)[1482~1519]와 함께 사림파의 개혁정치를 이끌었으며, 유희춘은 최부·임억령(林億齡)·윤구(尹衢)·윤선도(尹善道)·박백응(朴伯凝)과 함께 ‘해남육현(海南六賢)’이라 일컬어졌다.
유계린은 1528년(중종 23) 사망하였다.
[묘소]
유계린의 묘소는 전라남도 담양군 대덕면 비차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