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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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克仁 |
영어공식명칭 | Lee Geuk-in |
이칭/별칭 | 사안(士安),송정(松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수경 |
[정의]
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신.
[가계]
이극인(李克仁)[1602~1641]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사안(士安), 호는 송정(松汀)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국형(李國衡), 할아버지는 호조판서 이후백(李後白)[1520~1578]이다. 아버지는 별좌(別坐)를 지낸 이복길(李復吉)이다. 이극인의 형제는 이영인(李榮仁)·이우인(李友仁)·이호인(李好仁)이다. 종형(從兄) 이수인(李壽仁)은 문과에 합격하여 전한(典翰)을 지내고 벼슬에서 물러나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활동 사항]
이극인은 1635년(인조 1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39년(인조 17)에는 벼슬이 지평(持平)에 이르렀으나, 1639년 6월 아버지 이복길의 병구완을 위해 낙향하였다. 1640년(인조 18) 2월에 이극인에게 춘추관기주관(爲兼春秋館記注官)[역사 기록과 편찬을 담당하던 춘추관 소속 5품 관원]의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1640년 4월 의금부에 수감되었다. 1640년 6월에 수감 중인 이극인의 병세가 엄중함을 알리는 금부의 보고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극인은 다음 해인 1641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상훈과 추모]
이극인과 오랫동안 교유하였던 창명(滄溟) 남선(南翧)[1609~1656]은 『창명유고(滄溟遺稿)』에 수록된 오언율시 「만이지평극인(挽李持平克仁)」를 통해 “槐院曾同席[승문원에서 일찍부터 함께 지냈고] 城西久接隣[도성 서쪽에서 오래 이웃하며 살았지]”라며 이극인을 애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