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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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爾厚 |
영어공식명칭 | Yun Ihu |
이칭/별칭 | 재경(載卿),지암(支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수경 |
출생 시기/일시 | 1636년 - 윤이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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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79년 - 윤이후 생원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689년 - 윤이후 문과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691년 - 윤이후 함평현감 역임 |
몰년 시기/일시 | 1699년 - 윤이후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698년 - 윤이후 가사 「일민가(逸民歌)」 저술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692년 - 윤이후 『지암일기(支菴日記)』 저술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692년 - 윤이후 『죽도시첩(竹島詩帖)』 저술 |
거주|이주지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팔산리 |
외가|처가 | 동래 - 부산광역시 동래구 |
외가|처가 | 전의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
부임|활동지 | 함평현 - 전라남도 함평군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해남(海南) |
대표 관직 | 사간원정언 |
[정의]
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인.
[가계]
윤이후(尹爾厚)[1636~1699]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재경(載卿), 호는 지암(支庵)이다. 할아버지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이고, 아버지는 윤의미(尹義美),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이다. 윤이후가 태어나기 열흘 전 아버지 윤의미가 스물네 살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어머니 동래정씨도 남편을 따라 죽으려 했으나, 윤선도의 만류로 아들 윤이후를 낳은 뒤에 음식을 끊고 닷새 만에 사망하였다. 윤이후는 이후 할아버지 윤선도 밑에서 자라다가 삼촌인 윤예미(尹禮美)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부인은 참봉 이사량(李四亮)의 딸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자화상」으로 유명한 문인화가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가 넷째 아들이다.
[활동 사항]
윤이후는 1636년(인조 14) 해남에서 태어났다. 1679년(숙종 5) 44세에 생원시에 급제하였고, 1689년(숙종 15) 증광시(增廣試)에 급제하였다. 이후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이조좌랑(兵曺佐郞), 정랑(正郎), 선혜청랑(宣惠廳郞),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등을 역임하였다.
윤이후는 1691년(숙종 17) 함평현감으로 부임했지만 서인의 발호로 1년 만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해남 본가에서 10여 리 떨어진 옥천[현 해남군 옥천면 팔산리]에 터를 잡아 집을 지었으며, 종가 소유인 남새[현 진도군]의 죽도(竹島)에 모옥(茅屋)[띠나 이엉 따위로 지붕을 인 초라한 집]을 지어 놓고 오가며 유유자적하다가 1699년(숙종 25)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윤이후는 해남으로 낙향한 후인 1692년 3월 7일부터 1699년 9월 8일까지의 일상을 담은 3책의 일기 『지암일기(支菴日記)』를 남겼다. 『지암일기』는 조선시대 양반 사회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향촌 사대부의 여행기로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지암일기』 3권에는 함평현감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낙향하는 감회를 적은 가사 「일민가(逸民歌)」가 수록되어 있다. 또 말년에 죽도에 머무를 당시 여러 문인들과 주고받은 시들을 엮은 『죽도시첩(竹島詩帖)』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