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6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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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華岳文信 |
영어공식명칭 | Hwaak Muns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인선 |
출생 시기/일시 | 1629년 - 화악 문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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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07년 - 화악 문신 입적 |
추모 시기/일시 | 1709년 - 대흥사 승탑원에 화악 문신 승탑 건립 |
출생지 | 전라도 해남현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
활동지 | 대흥사(大興寺)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799] |
성격 | 승려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흥사 강백 |
[정의]
조선 후기 대흥사에서 활동한 해남 출신 승려.
[활동 사항]
화악(華岳) 문신(文信)[1629~1707]은 1629년(인조 7) 해남군 화산면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대둔사(大芚寺)[현 대흥사의 옛 이름]로 출가하였다. 취여(醉如) 삼우선사(三愚禪師)의 화엄종지(華嚴宗旨)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 3년 동안 낮에는 대둔사의 토목공사를 돕고 밤에는 불서를 읽으며 지내다가 전국을 떠돌며 정진하였다. 전국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그들로부터 모두 인가(印可)를 받아 취여 삼우의 법을 전수받았다. 이후 화악 문신에게 불법을 배우려고 모여든 사람들이 1,000여 명이나 되었다. 화악 문신은 명실공히 국내 제일의 화엄강사(華嚴講師)로서 화엄종지를 강론(講論)하였다.
대둔사에서 『화엄경(華嚴經)』 법회가 열렸을 때 소문을 듣고 찾아온 묘향산 보현사 월저선사(月渚禪師)와 선지식을 논한 뒤 월저가 화엄종주로 삼을 만한 인물이라 여겨 강석을 월저에게 양보하고 법회가 끝날 때까지 면벽참선하였다. 법회를 마치고 묘향산으로 돌아간 월저는 제자들에게 “남쪽 지방에 갔다가 살아 있는 보살을 친견하였다.”라며 화악 문신의 학덕을 칭찬하였다고 한다.
화악 문신은 1707년(숙종 33) 대흥사에서 입적하였다. 제자 중에는 설봉(雪峰), 벽하(碧霞) 등 21명이 특히 유명하다.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