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8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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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興寺一枝庵 |
영어공식명칭 | Daeheungsa Iljiam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799]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인선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824년 - 대흥사 일지암 초의의순 일지암 중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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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대흥사 일지암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799] |
성격 | 암자 |
창건자 | 초의선사 |
전화 | 061-533-4964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22교구의 본사 대흥사 소속 암자.
[건립 경위 및 변천]
대흥사 일지암(大興寺一枝庵)은 초의선사가 39세인 1824년(순조 24)에 중건하였으며, 1866년(고종 3) 81세로 입적할 때까지 지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초의선사는 완호의 법맥을 이은 대흥사 13대 종사로, 1840년 55세 때에 대각등계보제존자초의대선사(大覺登階普濟尊者艸衣大禪師)라는 사호를 받았다. 초의선사는 대흥사 일지암에서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펴냈고, 선다일여의 가풍(家風)을 드날리었다. 당시 대둔사[대흥사] 가까이 있던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유명한 다인(茶人)들이 초의와 차를 통하여 교유하였다. 다산은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대흥사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추사 또한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된 까닭에 대흥사와의 관계를 맺게 되고 초의와도 친교를 가졌다. 이런 까닭으로 19세기 초 대둔사를 중심으로 다도는 다시 한 번 중흥을 이루게 된다. 초의선사가 입적 후 화재로 인해 폐사지로 남아 있던 일지암은 1979년 승려 응송과 낭월이 일지암의 터를 확인하여 중건하였다고 한다. 또한 ‘일지암’이라는 편액이 걸린 초정(草亭)[정자]은 1980년 한국다인회 회원들이 다도의 중흥조 초의가 기거했던 일지암을 기념하기 위해 복원한 것이다. 일지암은 우리나라 다문화의 성지이자 조선 후기 예술과 문화의 산실로 평가되고 있다.
[활동 사항]
대흥사 일지암은 매년 음력 8월 1일 초의의 열반일을 기해 추모행사인 초의제를 거행하고 있다.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일지암 본당은 자우산방, 초정이 있다. 초정은 가운데에 방 한칸을 두고 사면에 툇마루를 두른 약 13.22㎡[4평] 규모의 띠집이다. 본당은 윗연못에 평석을 쌓아올린 4개의 돌기둥이 누마루를 받게 하여 독특한 운치를 자아내는 부속채 건물이다. 규모는 누마루 포함 3칸이며, 형태는 방고 부엌을 ‘ㄱ’ 자로 꺽어 세운 기와집이다. 자우산방은 차실로 초의선사의 영정이 걸려 있으며, 다양한 소품으로 꾸며져 있다. 차나무가 정자 앞에 심어져 있고, 선다를 음미하였던 다정(茶亭)이 있다. 집 뒤의 바위 틈새에서 솟는 물이 나무 대롱에 연결된 돌물학에 담겨져 흐르는 다천(茶泉)과 돌물확, 차를 끓이던 돌부엌 그리고 위아래의 연못과 좌선석(坐禪石) 등은 옛 모습대로 복원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