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1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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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婚禮 |
영어공식명칭 | Wedding Ceremony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옥희 |
[정의]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행해지는 혼인에 관련한 의례.
[개설]
혼례는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루어 새 출발하는 의미를 새기고 이를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의례이다. 혼인은 ‘장가들다’의 의미를 가진 ‘혼(婚)’ 과 ‘시집가다’의 의미를 가진 ‘인(姻)’이 합하여진 단어로, 장가들고 시집간다는 의미이다. 혼례는 남녀의 결합이자,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며 마을과 마을의 결합이기도 하므로, 혼례를 통해 두 사람은 개인적 결합을 떠나 사회적 인정을 받게 된다. 현재 해남 지역에서는 서양식 예식장에서 현대식 결혼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1970년대까지는 전통 혼례가 주로 치러졌다.
[절차]
우리 선조들은 인생에서 혼인 의례를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 절차 역시 중요시되었다. 전통적인 혼례는 의혼(議婚), 납채(納采), 택일(擇日), 납폐(納幣), 예식(禮式), 친영(親迎) 등 여섯 예법의 절차를 따른다.
가. 의혼
집안에 혼기가 찬 자녀가 있으면, 일가나 이웃에서 적당한 혼처를 소개해 준다. 주로 다른 마을로 시집을 간 일가나 다른 마을에 거주하는 친척이 그 마을 사람을 중매해 주기도 하고, 이웃에서 자신의 친정이나 친척을 통해 중매해 주기도 한다. 혼인은 집안과 집안이 결합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가세(家勢)나 집안의 내력 등을 고려하여 서로 비슷한 집안을 중매로 연결해 준다.
나. 납채
혼담이 오간 후 혼인할 것이 결정되면 사성(四星)[사주단자]이라 하여 신랑의 생년월일시를 적어 신붓집으로 보낸다. 사성을 보내는 것은 곧 혼인 관계가 성립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성을 보내기 전에는 집안의 사정에 따라 혼인을 취소할 수 있지만 일단 사성을 보낸 후에는 파혼하지 못한다.
다. 택일
신붓집이 신랑집으로부터 사성을 받으면 신부의 사주와 따져 혼인일을 택한다. 이를 ‘날받이’ 또는 ‘날기’라 하는데, 신랑집에서 먼저 택일하여 사성을 보낼 때 함께 알리기도 한다. 혼인은 주로 농한기인 겨울에 하는데, 정초보다는 동짓달이나 섣달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정초에는 마을별로 동제를 지내는 일이 흔하여 동제를 피해 날을 잡기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간혹 섣달그믐날에 혼인을 치르는 일도 있는데, 이때는 해를 넘겨서 신행을 가지는 않아야 해서 당일에 신행을 가게 된다.
라. 납폐
혼인날이 정해지면 본격적으로 혼인 준비에 들어간다. 신붓집에서는 먼저 혼수품을 마련하기 시작하는데, 이불과 옷을 준비하려면 시일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해남 지역에서는 신붓집에서 혼수품을 모두 부담하지 않고 신랑집에서 옷감과 이불 감, 목화 등을 준비해 신붓집으로 보낸다. 이를 ‘혼새’라 한다.
마. 예식
혼례식을 올리는 날이 되면 새벽에 신랑집과 신붓집에서는 혼인을 잘 치르고 잘 살게 해 달라고 성주 앞에 비손을 한다. 이를 ‘그늘손 비빈다.’ 또는 ‘거먹손 비빈다.’라고 한다. 집안에 따라 밥과 나물, 대추, 밤 등을 간단히 차려 놓고 비손을 하기도 하고 단골[무당]을 불러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단골을 부르는 경우 쌀을 대접에 소복하게 쌓고 그 위에 종짓불을 피워 놓는데, 이때 종지 그릇 하나에 심지를 두 개 만들어 태운다. 종짓불의 심지가 타는 형상을 보고 혼인할 부부의 생활을 예견해 보기도 한다.
신랑은 웃손, 중방과 함께 신붓집으로 간다. 웃손은 신랑집의 대표자로, 신랑의 손윗사람 중 금슬이 좋고 덕이 많은 사람으로 정한다. 중방은 함을 지고 가는 사람으로, 이 역시 금슬이 좋고 자식 복이 많은 사람이 가야 하기 때문에 사성을 가지고 갔던 사람이 가는 경우가 보통이다. 6·25전쟁 이후에는 신랑의 초행길에 친구가 함께 가기 시작하는데, 이들을 두고 우인 대표라 한다. 신랑 일행이 신부가 사는 마을에 당도하면 바로 신붓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웃집에 별도로 마련된 주점에 먼저 들어간다. 신랑 일행은 주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혼인 준비에 들어가는데, 중방은 신붓집에 함을 전달하고 그 사이 신랑은 혼례복을 갈아입는다. 신랑이 초행을 갈 때 혼례복을 넣은 함도 함께 신붓집으로 보낸다. 이때 함 속에 혼서지도 함께 넣어 가는데, 혼서지는 신랑집 어른이 신붓집 어른에게 보내는 편지로 일종의 결혼 서약서이다.
혼례 준비가 마무리되면 신랑이 주점에서 나와 신붓집으로 가는데, 말이나 가마를 타고 신붓집 대문 앞에서 내린다. 신랑이 신붓집에 가는 사이 신부네 마을 사람들이 달려들어 부채를 빼앗고, 파자(破字)나 어려운 말로 질문을 던지는 등 장난을 친다. 신붓집 대문 앞에는 숯을 채운 가마니를 두고, 그 위를 신랑이 밟고 들어오게 하는데, 부정을 막는 뜻이다. 혼례 시간에 맞추어 신랑이 신붓집으로 들어가면 비로소 혼례식이 시작된다.
혼례상은 사당에서 사용하는 높은 상을 사용하거나 도구통[절구통] 두 개를 놓고 그 위에 널을 깐 뒤 교자상을 올려 사용하기도 한다. 혼례상 위에는 닭 한 쌍과 나무 오리, 생선, 떡, 밤, 대추, 쌀, 팥 등을 차리고 대나무나 동백나무 등으로 장식한다. 상 양쪽에는 옹구병[항아리병]에 동백꽃이 달린 동백나무와 대나무, 사철나무 등을 잘라서 꽂고 청실홍실로 장식한다. 혼례식의 순서는 집례(執禮)의 외침에 맞추어 진행한다. 신랑이 남쪽을 바라보고 ‘동네절’을 하며 하늘에 혼인을 고하면 비로소 신부가 안내를 하는 인접(人接)의 인도에 따라 마당으로 나온다. 신랑과 신부가 혼례상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서면 먼저 신랑이 신부에게 절을 두 번 하고, 신부는 이에 대한 답례로 네 번 절을 한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서로 술을 주고받는다.
혼례가 끝나고 신랑과 신부가 식사를 마치면 상과 병풍을 치우는 사이 신부의 오빠와 사촌 오빠들이 신랑을 데리고 나가 꽃을 훔쳐간 도둑놈이라 놀리며 발을 때리는데, 이를 ‘신랑 달아맨다.’라고 한다. 신랑 다루기가 끝나고 하객들이 다 돌아가면 신랑과 신부는 초야를 치른다.
바. 친영(親迎)
초야를 보내고 이튿날이 되면 신랑과 신부는 신랑집으로 신행을 떠난다. 신붓집에서는 혼례식을 마치고 신행 준비를 하느라 바쁜데, 미리 마련해 둔 혼수품을 가마에 싣고 이바지 음식과 폐백 음식을 동구리에 싼다. 신행은 신랑과 신부 외에 신붓집 웃손과 하님, 짐꾼이 함께 간다. 신행 준비를 마치고 가마가 출발하면 잡귀를 물린다고 해서 목화씨와 콩, 팥을 가마에 뿌린다. 가마 안에는 요강과 반짇고리 등을 넣어 가고 가마 밖에는 머릿기름병과 바가지 등 생활용품을 매달고 간다. 신부가 탄 가마가 신랑집으로 들어서면 가마 문을 방 문 앞에 대어 신부가 땅을 밟지 않고 방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 신부가 방에 앉으면 이내 미리 준비해 간 찰떡[입마개떡]을 시누에게 먹이는데, 시집살이를 시키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신행길이 짧아 일찍 신랑집에 도착한 경우에는 당일 저녁에 폐백을 올리고 그렇지 않으면 이튿날 아침에 행한다. 폐백 음식으로는 폐백닭과 떡, 과일 등을 이바지와 별도로 마련해 간다. 일가가 모두 모이면 폐백 음식을 상에 차려 두고 직계인 시부모를 시작으로 항렬에 따라 인사한다.
신행을 간 지 3일째가 되면 부부가 함께 신붓집에 다녀오는데 이를 ‘재행’이라 한다. 본래 재행은 혼인이 잘 끝났음을 신붓집에 알리고자 신랑이 혼자 다녀오는 것이지만, 시부모가 허락하면 신랑과 신부가 함께 재행을 갈 수도 있다. 그리고 해방 후에는 신랑과 신부가 함께 재행을 가는 것이 보편화되었다고 한다. 재행을 갈 때는 신랑집에서 이바지에 대한 답례로 떡과 엿, 과자, 술 등을 마련해 보내며, 신붓집에서는 이에 대한 답례로 음식을 마련해 신랑 편에 보낸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혼례상을 장식한 꽃과 청실홍실 등 혼사에 쓰인 물건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여겨 혼례가 끝나면 구경꾼들이 챙겨 갔다고 한다. 신랑이 혼자 재행을 다녀올 때에는 혼인 후 1년이 지나면 신랑과 신부가 함께 신붓집에 다녀올 수 있도록 했다. 보통 정초에 차례를 지내고 나서 근친(覲親)을 다녀오도록 하는데, 한번 가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보름 동안 친정에서 지내다 올 수 있어 신부에게는 일종의 휴가나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혼례 때 돈으로 부조하는 사례는 흔치 않았고, 현물이나 노동력 등으로 부조를 대신했다고 한다. 현물로 부조하는 경우 잔칫집에 필요한 쌀이나 나물, 술을 가지고 가는 것이 보통이고, 노동력을 제공한다면 혼수를 마련할 때 도움을 주거나 가마를 메기도 하고 짐꾼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