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7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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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仲行先生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산137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덕원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397년 - 김중행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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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453년 - 김중행 사망 |
조성 시기/일시 | 1455년 - 김중행 선생 묘 조성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6년 4월 - 김중행 선생 묘 포천시 향토 유적 제27호로 지정 |
현 소재지 | 김중행 선생 묘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산137 |
성격 | 묘 |
양식 | 원형 봉분 합장묘 |
관련 인물 | 김중행(金仲行)[1397~1453]|순흥 안씨(順興 安氏) |
봉분 크기/묘역 면적 | 봉분 전체 높이 267㎝|정면 540㎝|측면 680㎝, 묘역 면적 약 264.46㎡[80평] |
문화재 지정 번호 | 포천시 향토 유적 제27호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중행의 묘.
[개설]
김중행(金仲行)[1397~1453]은 본관이 언양(彦陽)이고, 호는 여계이다. 고려 시대 고종 때 장군인 김취려(金就礪)의 7세손이고,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 김소(金素)의 둘째 아들이다. 1453년(단종 1)에 숭의랑(崇議朗) 군자 주부(軍資主簿)에 이르렀지만, 이후 모든 관직을 버리고 은둔 생활을 하였다. 숙종 때 영의정(領議政)에 증직되었다.
[위치]
지방도 325호선 북쪽으로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에서 창수 초등학교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창수 초등학교를 지나 임봉동에서 좌회전하면 남동쪽으로 뻗어 나온 나지막한 구릉 끝에 위치하고 있다. 주소지는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산137번지이다.
[변천]
봉분 주위로 낮은 사성(莎城)을 둘렀는데 후대에 보수한 것으로 추정되며, 장명등도 후대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형태]
묘역은 부인 순흥 안씨(順興安氏)와 단분 합장으로 봉분은 원형이나 사각 형태이며, 3단으로 호석을 둘렀다. 묘역은 3단으로 나뉘어 상계에는 봉분·묘비·상석 2기가 있으며, 중계에는 장명등과 무인석을 갖추었고, 하계에는 아무것도 배치하지 않았다.
묘역은 약 264.46㎡[80평]로 비교적 넓은 편이며, 3단의 계단석이 마련되어 있고 좌향은 남동향이다. 상석은 봉분 양 좌우에 2기가 놓여 있다. 왼쪽 상석은 128×83×22㎝, 오른쪽 상석은 129×84×21㎝ 규모로 2기가 동일한 양식이다. 장명등은 등좌부·화사석·옥개석을 1석으로 조성하였으며, 전체 높이는 190㎝이다. 옥개석은 팔각으로 경사가 급하고 처마와 합각선이 두툼하다. 옥개석의 상면에는 연봉형 보주가 있고, 보주 아래에는 16조의 연주문이 조식되어 있다. 등좌부의 상대와 화사석의 구분이 없고, 중대와 인접하여 방형의 액을 음각하였다. 화사석에는 4면의 화창을 개설하였는데, 화창의 크기가 각각 다르다.
문인석은 총 4기로 상석 앞 좌우에 2기, 비석 앞 좌우에 2기가 있다. 또한 비석 앞에는 높이 25㎝의 9매의 장대석으로 된 1단의 단으로 구획하고 있다. 무인석은 오른쪽이 전체 높이 200㎝, 두께 61㎝이고, 왼쪽이 전체 높이 203㎝, 두께 53㎝로 동일한 양식이다. 용린관을 착용하고 갑옷을 입고 있다. 투구는 둥근 형태로 상부에 촉이 있다. 눈은 부릅뜨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목이 거의 표현되지 않아 얼굴이 앞으로 약간 돌출된 느낌을 준다.
양팔은 가슴으로 가지런히 모아 칼을 잡고 있다. 가슴 중앙에는 갑옷의 단추로 보이는 연주문 3조가 세로 방향으로 조식되어 있다. 어깨에는 날개 장식이 표현되어 있고, 팔목에는 옷 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의문(衣紋)은 양팔 밑 좌우에 3조의 음각선으로 표현하였다. 발목에는 의문을 ∩형으로 두툼하게 조식하고 신발을 표현하였다. 배면에는 과대를 표현하였고, 과대의 중앙에 화문을 조식하였다.
[금석문]
묘비는 봉분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좌와 비신, 이수를 갖추고 있다. 비석은 전체 높이 178㎝이고, 비좌는 112×65×15㎝로 상면에 24판의 복엽 연화문과 2단의 비신 받침이 조식되어 있다. 비신과 이수는 1석으로 되어 있다. 이수는 투구형으로 상단에 연봉형 보주가 있고, 보주 하면에는 연주문이 조식되어 있다. 투구형 이수 하면과 비신의 구분은 5개의 반원형 조식으로 처리하였다.
묘비는 2면 비로 자경(字徑)은 앞면 9㎝, 뒷면 6㎝이다. 비문은 앞면에 세로로 2행이 새겨져 있는데, ‘유명 조선국 승의랑 군자 주부 김중행 순흥 안씨 합장 지묘(有明朝鮮國承議朗軍資主簿 金仲行順興安氏合葬之墓)’라 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경태 육년 삼월 십이 일 입석 계유 오월 이십팔 일 장 계유 오월 합장(景泰六年三月十二日立石 癸酉五月二十八日葬 癸酉五月合葬)’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이 묘역은 1455년(세조 1)에 건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황]
김중행 선생 묘는 1986년 4월 포천시 향토 유적 제27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상단의 호석에는 횡선을 음각하였고, 아래의 네 모서리에는 연주문을 양각하는 등 장식성이 뛰어나다. 사각형의 봉분은 크고 웅장한 편이며, 조선 전기의 형식을 잘 나타낸다. 묘역에 배치된 석물은 대부분 웅장하고 솜씨가 뛰어난 조각들이다. 특히 무인석은 왕릉의 무인석과 유사한 도상으로 일반 사대부 묘역에서는 드문 예이며, 크고 입체감 있는 표현이 돋보인다. 장명등도 사대부 묘역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로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