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7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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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夢亮墓-神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 광촌 마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엄익성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499년 - 이몽량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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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564년 - 이몽량 사망 |
조성 시기/일시 | 1565년 - 이몽량 묘 조성 |
조성 시기/일시 | 1604년 - 이몽량 묘 신도비 건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64년 - 이몽량 묘 신도비 새로 세움 |
현 소재지 | 이몽량 묘 및 신도비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 광촌 마을 |
성격 | 묘|신도비 |
양식 | 원형 복분 |
관련 인물 | 이몽량(李夢亮)[1499~1564]|함평 이씨(咸平李氏)|전주 최씨(全州崔氏) |
[정의]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금현리에 있는 조선 전기 시림 부원군 이몽량의 묘와 신도비.
[개설]
이몽량(李夢亮)[1499~1564]은 본관이 경주(慶州)이며, 자는 응명(應明)이다. 1522년(중종 17) 생원·진사시에 급제하였고, 1528년 명경시(明經試)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에 제수되었다. 그 후 동지중추부사·한성부 판윤을 거쳐 우참찬에 이르렀다. 부인이 둘인데 첫째 부인 함평 이씨(咸平李氏)는 참봉 이보(李堡)의 딸이고, 둘째 부인 전주 최씨(全州崔氏)는 현감 최윤(崔崙)의 딸이다. 이몽량은 아들인 오성 부원군(驁城府院君) 이항복(李恒福)의 현달로 1598년(선조 31) 영의정과 시림 부원군(始林府院君)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헌(定獻)이다.
[위치]
포천에서 국도 43호선을 이용하여 내촌 방면으로 가다가 하송우리 사거리에서 좌측 지방도 360호선로 내촌 방면으로 이동하여 서원교에서 우측 지방도 383호선[마정로]로 금현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오성교 앞에서 좌측 오성 1길을 150m 더 가면 이몽량 묘 및 신도비가 보인다.
[변천]
이몽량이 1564년 겨울 66세로 세상을 뜨자 다음 해 봄에 포천현 화산리[현 포천시 가산면 음현리]에 장사 지냈다. 이후 1571년 부인 전주 최씨가 세상을 뜨자 이몽량 무덤 오른쪽에 별도의 봉분을 조성하였다.
[형태]
이몽량의 무덤이 중앙에 자리하고, 그 좌·우측에 함평 이씨와 전주 최씨의 봉분을 각기 배치하였다. 묘역은 크게 상·하단으로 나뉘어 상단에는 3기의 봉분·묘표·혼유석·상석 등이 있으며, 하단에는 향로석·동자석 1쌍·장명등·망주석 1쌍 등을 배치하였다. 이몽량의 봉분 앞에만 원수 방부형(圓首方趺形) 묘표를 세웠고, 묘역의 좌향은 자좌오향(子坐午向)[정북에 앉아 정남을 보는 방향]이다. 묘역 아래에는 두 기의 신도비가 있다.
[금석문]
1604년에 세운 신도비에는 최립(崔岦)[1539~1612]의 글을 한호(韓濩)[1543~1605]가 해서체로 썼으며, 노직(盧稷)[1545~1618]이 전액을 하여 비문의 삼절(三絶)로 불린다. 후에 비문이 마모되자 1864년에 새로 신도비를 세운 내용을 명기한 10세손 이유원(李裕元)[1814~1888]의 추기가 더해졌고, 형태는 원수 방부형(圓首方趺形)이다. 옛 비문을 그대로 옮긴 1864년에 세운 신도비는 옥개 방부형(屋蓋方趺形)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