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8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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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遊擊隊戰績碑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2리 산146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진호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991년 - 독수리 유격대 전적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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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 2리 산 146번지 |
성격 | 현충 시설|기념비 |
관련 인물 | 최종성|최종철|최면택 |
크기(높이 | 8.2m |
면적 | 330㎡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 2리에 있는 현대 6·25 전쟁 당시 독수리 유격대의 활동을 기념하여 세운 비.
[개설]
포천은 6·25 전쟁 당시 북한 공산군 남침의 주요 길목이었다. 이곳의 현충 시설 중 독수리 유격대 전적비가 있다. 1950년 11월 30일 대한 청년단 간부인 최종성·최종철 형제를 주축으로 포천군 신읍에서 나라와 고향을 지키려는 포천 지역 젊은이 63명이 독수리 유격대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국군 제2사단 17연대에 유격대로 배속된 뒤 경상북도의 의성·청송·안동·예천·풍기 지역과 충청북도의 제천·단양 지역에서 인민군 10사단과 공비들을 토벌하였고, 김화 지구 전투에도 참전하였다.
6·25 전쟁 중 많은 공을 세웠으나 이들 중 16명이 전사하였을 정도로 희생이 컸다. 독수리 유격대는 군인이 아닌 민간인 신분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조직한 부대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분이나 전공·상훈에 초연하였기 때문에 국가에서조차 잊힌 채로 지내다가 1989년 1월 고 최종성의 아들인 최면택이 아버지를 비롯한 대원들의 신원과 공로를 청와대에 진정한 끝에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그 업적을 인정받게 되었다.
[건립 경위]
독수리 유격대 기념 사업회에서 이들의 나라 사랑의 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1989년부터 전적비 건립 사업을 추진하였다. 1989년부터 추진되어 온 전적비 건립사업을 통해서 국방부·재향 군인회·포천군·포천 문화원·육군 3070부대의 지원과 대원 및 유족들이 비용을 부담하여 1991년 비를 건립하였다.
[위치]
독수리 유격대 전적비는 포천시 이동면 노곡 2리 산146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 명성산, 동북쪽으로 백운산, 남쪽으로 운악산이 에워싸고 있다.
[형태]
전적비의 현재 부지 면적은 330㎡이며, 화강암을 깎아서 만든 좌대(座臺)는 면적 4㎡, 기념비는 높이 8.2m이다. 기념비 전면에는 최면택이 쓴 ‘독수리 유격대 전적비’가 세로로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김진동의 헌시가 새겨져 있다. 헌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조국 앞에 모이고 뭉쳐/ 이 겨레 이 강토 지켜 낸/ 장한 임들이여/ 해와 달이 되어 이 겨레/ 살피시고/ 산천초목 되어 이 강토/ 감싸소서.”
[현황]
2003년 현충 시설로 지정되었다. 매년 6월 6일 생존 유격대원, 유격대원 유족, 시 관계자 등이 이곳에서 추모 행사를 한다. 독수리 유격대 전적비에서 5㎞ 거리에 산정 호수가 있고, 해발 900여 m의 우람한 명성산이 산정 호수를 굽어보고 있다.
[의의와 평가]
독수리 유격대는 6·25 전쟁 중 북한 공산군의 남침에 맞서 포천의 젊은이들이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 조직한 민간 유격대로서 1950년부터 휴전 협정이 체결된 1953년까지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각종 전투에 참여하였다. 유격대원 중 16명이 전사하는 희생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싸운 고귀한 희생을 기려 비를 세웠다. 매년 독수리 유격대 전적비 앞에서 추모 행사를 하고 있으며, 포천을 찾는 이들에게 나라 사랑의 마음을 되새기게 하는 현충 시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