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8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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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萬歳橋里胎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 산4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덕원 |
훼손 시기/일시 | 일제강점기 - 만세교리 태봉 훼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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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건립 시기/일시 | 1738년(영조 14) - 만세교리 태봉 건립 |
현 소재지 | 만세교리 태봉 - 신북면 만세교리 산47 |
성격 | 태봉(胎封) |
관련 인물 | 영조(英祖)|유건기(兪健基) |
크기(높이 | 193㎝[표석] |
너비 | 43㎝[표석] |
폭) | 18㎝[표석] |
문화재 지정 번호 | 포천시 향토 유적 제23호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옹주의 태실.
[개설]
만세교리 태봉(萬歳橋里胎封)은 1738년(영조 14)에 태어난 영조의 후궁 소생의 옹주 아기씨(翁主阿只氏)의 태실(胎室)이다. 금표(禁標)에 의하여 엄격하게 보호를 받고 있던 이 태실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서 문화재 조사라는 명목 아래 옹주의 태를 담았던 태 항아리와 지석(誌石)이 도굴되었고, 현재는 표석과 개석(蓋石)만이 남아 있다.
[건립 경위]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태봉 등록(胎峰謄錄)』[규(奎) 12893]에 의하면 만세교리 태봉의 주인공은 1738년 1월 19일에 태어난 영조의 후궁 소생의 옹주 아기씨이다. 길지인 당시 포천현 북면 만세교리 동변 을좌(乙坐) 신향(辛向) 소재의 봉우리가 같은 해 2월 16일에 태봉으로 낙점되어 장태 길일(藏胎吉日)인 그해 3월 26일에 안태사(安胎使)로 임명된 우승지 유건기(兪健基)의 책임 아래 공사를 마친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위치]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의 만세교에서 남쪽으로 500m 정도의 거리에 있는 태봉산(胎峰山)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소지는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 산47번지이다.
[형태]
현재는 표석과 개석만이 남아 있는데, 표석은 사각형 비좌(碑座)와 비신(碑身), 그리고 이수(螭首)를 갖추고 있으며, 규모는 193×43×18㎝이다. 비신은 2면 비로 앞면에 ‘건륭삼년정월이십구일축시생옹주아지씨태실(乾隆三年正月二十九日丑時生翁主阿只氏胎室)’이라고 되어 있고, 뒷면에는 ‘건륭삼년삼월이십육일오시립(乾隆三年三月二十六日午時立)’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개석의 지름은 83㎝이고, 중앙에는 직경 8㎝의 낮은 보주(寶珠)가 있다.
[현황]
현재 옹석(甕石)은 땅속에 묻혀 있고, 화강암의 표석과 개석이 지상에 노출되어 있다. 만세교리 태봉은 송우리 태봉 및 성동리 태봉과 함께 포천시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태봉 관련 유적이며, 현재 향토 유적 제23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