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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 전투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868
한자 內村戰鬪址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우금리 산89-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양영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내촌 전투지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우금리 산89-1지도보기
성격 전투지

[정의]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우금리에 있는 현대 6·25 전쟁 당시 육사 생도 대대가 방어 전투를 벌인 곳.

[개설]

내촌 전투는 6·25 전쟁 초기 육사 생도 대대가 내촌 일대에 방어 진지를 편성하여 북한군을 저지하였던 전투이다. 육사 생도 대대는 372고지에서 철야 경계 태세를 갖추고 진지 작업을 하였다. 대대는 교육을 받은 부대로 주진지와 예비 진지 및 보조 진지까지 구축하면서 사계 청소와 위장을 철저히 하였다. 일부 병력으로 진지 전방 지역에 지뢰를 매설하기도 하였다. 포천 방면의 적은 북한군 제3사단 병력으로서 아직 이 지역으로 전투력을 투입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6월 26일부터 일부 병력을 투입하여 공격을 개시하였다.

육사 생도 대대는 1950년 6월 26일 적의 공격을 받고 사격을 집중하며 적을 저지하였다. 북한군은 박격포와 대전차포 및 기관총의 엄호를 받으며 포천시 내촌면 내리 서남쪽의 개활지를 횡단하여 공격하였다. 적은 312고지 부근에서 후퇴 병력을 수습하면서 공격을 재차 감행하였다. 이에 대대 동쪽 제3중대와 서쪽 제1중대 진지에서는 수류탄을 투척하며 30여 분간 격전하던 중 제1중대의 서쪽 진지가 무너지자 한쪽에서는 육박전이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이때 대대에 철수 명령이 하달되었다. 이에 대대는 적과 접촉한 상황에서 오후 7시부터 철수를 시작하였다. 제2중대와 제3중대는 동쪽 국도 47호선을 따라 대체로 무난히 이동하였다. 그러나 서쪽 제1중대는 진지를 이탈하면서 일부 병력이 분산되어 광릉~용암리를 거쳐 퇴계원으로 내려오는 등 혼선을 빚음으로써 교전 때보다도 더 많은 병력의 손실을 보게 되었다. 이로써 육사 생도 대대는 제7사단 지역에서의 작전을 끝내고 6월 26일 저녁 9시 학교 본부로 집결하였다.

[위치]

내촌 전투지포천시 가산면 우금리 산89-1번지에 위치해 있다.

[현황]

전투 장소에 생도들을 기리는 ‘육사 생도 6·25 참전 기념비’가 1979년에 세워졌다. 육사 생도 6·25 참전 기념비는 “1950년 6월 25일 미명, 북괴 공산군이 불법 남침하자 수학 중이던 육사 생도 1기[현 육군 사관학교 10기] 312명과 생도 2기 330명은 육군 사관학교 기간 장교 및 교관들과 함께 사관생도로서 용약 출전하여 초전에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이를 기리기 위하여 최초의 격전지인 자리에 기념비를 세운다”고 밝히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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