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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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茂峰里三一運動萬歲示威址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 569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진호 |
소재지 | 무봉리 3·1 운동 만세 시위지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 5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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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유적지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에 있는 3·1 운동 당시 무봉리 주민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
[개설]
1919년 서울에서 전개된 3·1 운동 소식은 곧바로 포천 지역에 알려졌다. 3월 13일 포천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은 일본 교원들의 눈을 피해 학교 뒷산에서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러한 학생들의 시위는 포천 전 지역에 영향을 주어 3월 24일 영중면 영평리와 소흘면 송우리에서 본격적인 대중적 만세 시위가 일어났고, 이후 3월 29일과 30일 이틀에 걸쳐 포천 전 지역에서 일어난 대규모의 시위로 확산되었다.
1919년 3월 29일 소흘면 무봉리에서는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대한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이며 무봉리 일대를 시위행진하면서 기세를 올렸다. 만세 시위를 주도한 5명이 체포되었지만, 다음 날에도 신북면을 위시한 포천 군내 각처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후 4월 4일까지 소흘면·신북면·가산면·영중면·영북면·영중면·이동면 등지에서 지속적으로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위치]
무봉리 3·1 운동 만세 시위지(茂峰里三一運動萬歲示威址)는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 569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현황]
현재는 주거 지역으로 만세 운동을 벌인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의의와 평가]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한 만세 시위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곧 전국으로 퍼졌다. 포천에서도 포천 공립 보통 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3월 13일 만세 시위가 시작되어 대규모 시위로 확산되었다. 특히 1919년 3월 29일 소흘면 무봉리의 만세시위는 1,000여 명의 군중이 참가하는 대규모 시위로 일제 치하에서 독립을 염원하는 포천 지역민들의 독립 정신을 잘 보여 주었다. 특히 3월 29일의 만세 시위는 이튿날인 3월 30일 포천 지역 각지에서 벌어진 대규모 연합 만세 시위운동을 예고하는 전주곡 구실을 하였다.
포천 지역의 3·1 운동은 대중 운동의 첫 단계부터 일제 식민 통치의 행정 기관인 면사무소와 친일 면장, 그리고 식민지 무력 지배와 탄압의 중추 기관인 헌병 분견대 및 헌병 경찰을 공격한 점이 이채로운데 학생과 기독교 등 종교 지도자의 역할은 미미하였다. 이는 유림적 전통이 강하여 신지식인층의 역할이 크지 않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