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8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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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舊邑里寺址 |
이칭/별칭 | 구읍리 사지/구읍리 절터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167-1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의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6년 04월 09일 - 구읍리 절터 소재 포천 구읍리 석불 입상 포천시 향토 유적 제5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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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6년 4월 - 구읍리 절터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발굴 조사 시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8년 9월 - 구읍리 절터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발굴 조사 종료 |
소재지 | 구읍리 절터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167-1 (N37°53′26.3″/E127°13′17.6″) |
성격 | 절터 |
지정 면적 | 약 2,314.05㎡[700평] |
[정의]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절터.
[개설]
구읍리 절터의 포천 구읍리 석불 입상(抱川舊邑里石佛立像)은 1석의 화강암으로 조성되어 있다. 머리 정상에는 큼직한 육계(肉髻)가 솟아 있다. 상호는 원만한 편으로 눈·코·입 등이 표현되었으나, 인위적으로 파손된 흔적이 역력하다. 양쪽 귀는 길게 흘러 어깨에 닿았고, 목에는 삼도의 흔적이 약간 남아 있다. 어깨는 당당하여 상호와 함께 불상으로서의 자비와 위엄이 보인다. 법의(法衣)는 통견으로 의문 역시 뚜렷하지 못하다. 수인(手印) 역시 마멸이 심하나 현상으로 보아 오른손은 가슴에 들어 외장하였고, 왼손은 배 부분에서 내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허리 부분이 매몰되어 있어 하부의 상황은 알 수 없는데, 석불이 지닌 양식으로 보아 고려 시대 초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구읍리 절터에 대해서는 전하는 기록이 없어 정확한 이름과 유래를 알 수 없다. 문화재 관리국에서 편찬한 『문화 유적 총람』에는 “청성산 서남단에 위치한 석불 입상은 신라 말기의 것으로 전해지며 포천 반원 성지와 같은 연대로 추정하고 있다. 얼굴이 거의 마모되어 있고, 전체의 모습은 육계가 큰 편이며 목에는 삼도가 보이나 마멸이 심해 구별이 어렵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위치]
구읍리 절터는 반월산성이 있는 청성산 서남쪽 기슭 포천 향교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주소지는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167-1번지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구읍리 절터는 약 2,314.05㎡[700평] 규모로 보이는데, 전면에 2단의 기단을 구축하고 남서향의 사찰을 건립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단의 기단 길이는 22m, 높이 80㎝, 상단은 길이 20m, 높이 90㎝의 규모로 보인다. 포천 구읍리 석불 입상은 높이 50m, 길이 5m의 불단 위에 건립되었는데, 주변에 기와와 토기 조각이 산재한 점으로 보아 본래 석불을 봉안하였던 불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포천 구읍리 석불 입상은 현재 높이 2m, 머리 높이 70㎝, 어깨너비 80㎝, 가슴너비 28㎝이다. 1996년 4월~1998년 9월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구읍리 절터에 대해 발굴 조사를 하였다.
[현황]
구읍리 절터에 있던 사찰의 명칭 및 연혁은 알 수 없다. 현재 일대는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절터는 2단의 석축을 넓게 쌓은 후 한가운데에 불상을 봉안한 소규모 사찰로 추정된다. 석축 앞쪽에는 평탄지가 있고, 2단 석축은 서쪽 모서리 일부만 남아 있는데 근래에 정비한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 다량의 기와 조각이 산재하고 있다. 구읍리 절터의 포천 구읍리 석불 입상은 1986년 4월 9일 포천시 향토 유적 제5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