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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명리 절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887
한자 吉明里寺址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 산198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동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9년 7월 8일연표보기 - 길명리 절터 문화재청에서 지표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9년 7월 27일연표보기 - 길명리 절터 문화재청에서 지표 조사 종료
소재지 길명리 절터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 산198(N37°57'03.54" /E127°17'15.62")지도보기
성격 절터
지정 면적 2,000㎡[605평]
관리자 제8보병사단

[정의]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절터.

[위치]

길명리 절터금주산 동쪽의 좁은 계곡부인 일명 ‘절골’에 위치하고 있다. 제2355부대 301부대 주둔지 북동쪽 사격 훈련장 내 계곡 부분 좁은 평지에 위치한다. 주소지는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 산198번지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길명리 절터의 규모, 형태, 수습 유물의 양상을 종합해 볼 때 18세기 이후 짧은 기간 경영되었던 소규모 암자 터로 추정된다. 유물은 절터의 중심 건물지인 상단보다 하단 건물지에서 다량 수습되었는데, 이는 절터 상단의 토사가 자연적인 요인으로 계속해서 흘러내려 온 이유와 함께 오래도록 군 훈련장으로 이용되면서 원형이 일부 훼손된 이유 때문으로 추정된다.

수습 유물은 조선 후기의 창해 파문(滄海波文)의 기와 및 백자 조각 등이다. 수습 유물에 대한 분석은 아래와 같다. 기와 조각은 수키와가 주종을 이룬다. 색조는 흑색, 회청색, 명갈색 등 다양하며 태토(胎土)와 소성(燒成) 상태는 모두 하품에 속한다. 표면에 굵은 모래 석립(石粒)이 노출되어 있고, 기와를 구울 때 고열로 균열이 심하게 나 있다. 포흔(布痕)은 가늘고 창해 파문이 다양한 크기로 새겨져 있다. 두께는 2.4㎝ 남짓이고 수키와 미구[수키와끼리 물리는 자리]는 길이 2.5㎝이다.

자기는 소량의 백자 조각이 수습되었다. 태토와 시유(施釉) 상태는 보통이며 안굽과 죽절굽에 모래 받침을 하였다. 기종은 접시와 완(碗)이며 사용 흔적이 관찰된다. 기벽은 얇은 편이고, 접시 구연부편(口緣部片)의 구순(口脣)은 안으로 굽은 형태이다. 2009년 7월 8일~7월 27일 문화재청에서 길명리 절터 지표 조사를 하였다.

[현황]

유적의 총 면적은 2,000㎡[605평]이다. 동남향으로 자리한 길명리 절터에는 2단의 건물 터 흔적이 희미하게 확인되지만, 인위적으로 축조한 석축 단은 확연하게 노출되어 있지 않다. 다년생 잡초가 우거져 있는 산지 가람형의 절터 규모는 북서~동남이 70m, 북동~서남이 40m이고 본당이 위치하였을 상단의 방형 건물 터 흔적보다 하단의 요사채 흔적이 더욱 선명하게 확인된다. 하단의 건물 터는 35×20m 규모이다. 제8보병사단이 관리를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길명리 절터는 군 훈련장 내에 위치하여 훼손될 염려는 없으나, 앞으로 관할 군부대에 의해 원형 보존과 함께 효과적인 관리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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