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8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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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初果里寺址 |
이칭/별칭 | 초과리사지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초과2리 428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김의경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6년 9월 - 초과리 절터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발굴 조사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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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8년 4월 - 초과리 절터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발굴 조사 종료 |
소재지 | 초과리 절터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초과 2리 428 |
성격 | 절터 |
[정의]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초과 2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개설]
초과리 절터는 길이 50m, 높이 20m의 암반을 뚫어 굴착한 석굴과 요사채로 구성되어 있다. 동향한 석굴은 길이 16.7m, 높이 2.4m, 깊이 10.2m 규모로 상면과 하면이 타원형의 형태를 이루며 교차하고 있다. 석굴의 벽과 천장에는 굴착한 흔적이 역력히 보이고, 하면에는 굵은 모래가 깔려 있다.
석굴의 남쪽에는 요사채로 추정되는 정방형의 건물 터와 석축이 남아 있다. 요사채는 한 변 11m의 정방형의 형태를 보이고, 전면 석축은 길이 10.3m, 높이 1.2m 규모로 20×20㎝~110×40㎝ 크기의 석재를 사용하여 구축하였다. 석굴 내에는 석불이 안치되어 있었다고 하나, 대좌를 비롯한 내부 시설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석불의 머리는 결실되었고, 가부좌를 튼 좌상이나 하부가 매몰되어 정확한 형상은 알 수 없다. 목의 상면에 지름 13㎝, 깊이 5㎝의 원형 홈이 개설된 점으로 보아 머리는 따로 조성하여 꽂은 것으로 추정된다.
통견의 법의에는 두꺼운 삼조의 의문(衣紋)이 목의 뒤로부터 흘러내려 가슴의 하단에서 반전되었는데, 특히 왼쪽 팔목에서 흐르는 4조의 의문은 무릎을 향하여 길게 흐르고 있다. 배면에는 왼쪽 어깨로부터 흐르는 의문이 팔꿈치의 위쪽 단에 이르기까지 2조의 양각선을 길게 묘사하였다. 가슴은 엄지와 중지를 맞잡은 채 가슴이 심하게 돌출되어 불안전한 느낌을 주고 있는데, 약합(藥盒)으로 추정되는 지물을 들고 있다.
[변천]
초과리 절터에 있던 사찰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발견된 석불의 형상으로 보건대 고려 중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초과리 절터는 포천시 관인면 초과 2리 군부대 뒤편 야산에 있다. 주소지는 포천시 관인면 초과 2리 428번지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초과리 절터에 대한 정식 발굴 조사는 1996년 9월부터 1998년 4월 말까지 단국대학교 사학과가 하였으며, 단국대학교 사학과 박경식 교수 외 5명에 의해 발굴 보고서가 나와 있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불상 각 부분의 실측치는 높이 50㎝, 어깨너비 50㎝, 가슴너비 34㎝, 무릎너비 72㎝이다.
[현황]
초과리 절터 석축 앞으로 폭우로 형성된 계곡이 있어 흙이 깎여 나가고 있으며, 석축 정면의 대지는 최근 복토 등으로 지표가 상승하고 있다. 석불은 포천시 관인면 초과 2리 풍림 농장으로 이전되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행방을 찾을 수 없다. 석굴 안에 소량의 기와 및 토기 조각 등이 산재하여 있으며, 석축 아래에 다량의 기와 조각이 산재하고 있다.